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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구두 박물관(博物館)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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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두박물관이 있다 치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전시관 상단에 춘추전국시대 진 문공이 신었던 나막신이 있다. 19년 만에 영화를 되찾은 진문공이 망명 중 뒷바라지했던 개자추를 돌보지 않자 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참회(懺悔)를 하고 불렀으나 나오지 않자 그 산에 불을 질러 나오게 했지만 개자추는 나무밑둥을 끌어안고 타죽고 만다. 그것을 알고 문공은 그 나무로 나막신을 지어신고 항상 '족하(足下)'를 외치며 눈물 흘렸다는, 세상에서 가장 한 맺힌 신발이다.
 
가장 가벼운 신발은 한나라 성제의 사랑을 받은 비연의 신발일 것이다.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는 비연의 신발은 금가루를 먹여 기른 금거미의 거미실로 만들어 신겼다 하니 무게가 있을 수가 없다. 가장 도덕적인 신발은 효자인 증자의 신발일 것이다. 효도를 위해 가산(家産)은커녕 의식주마저 소흘히하여 관을 쓰니 끈이 삭아 끊어지고 신발을 신으니 발뒤꿈치가 드러났다 했다.
 
중국에서 가장 값나간 신발은 양귀비의 신발일 것이다. 목졸려 죽임을 당한 현장에서 이웃 할미가 신발 한짝을 주워 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이를 보는 데 1금(一金), 만져보는 데 10금(十金), 신어보는 데 100금(百金)을 받아 수만금을 챙겼다 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신발은 철종 때 기생 자동선의 꽃신(花鞋)일 것이다. 기생을 품에 안는 일을 절화라 했는데, 절화를 하려면 그 기생의 꽃신에 술 한잔 가득 부어 마셔야 한다. 이를 화혜주라 했고, 그 술값이 기생에 따라 차등이 심했다. 절개와 미모와 삼절로 소문났던 자동선의 화혜주를 마신 것은 그 무렵 으뜸가는 상업재벌 임상옥뿐이었다던데 그 꽃신값이 300석이었다 하니 과연 구두의 역사박물관에 전시될 만하다.
 
양적으로나 그 값으로 동서고금 최고의 구두가 일전 필리핀 수도권인 마리키나시에서 전시되었다. 1986년 민중혁명으로 마르코스 일가가 국외로 탈출했을 때 말라카냥 궁전에 남아있었던 1220켤레의 구두로 이멜다 당시 대통령부인이 신었던 소문난 신발들이다. 여기에 들른 이멜다는 "악명높은 것일지라도 아름답게 바꿔놓을 수 있는 법이다"했다 하니 구두 역사박물관에서 가장 소문난 코너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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