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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파크] '낙하산 단장은 가라' 선수 출신 단장이 대세

---Outside Park

by econo0706 2022. 9. 2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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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1. 25

 

모기업에서 파견한 ‘낙하산 단장’ 시대는 이제 끝나간다. 올겨울 KBO리그에 ‘선수 출신 단장’ 열풍이 불어 닥쳤다. 10개 구단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5개 팀이 야구선수 출신 인사에게 단장 역할을 맡겼다. 

▲ 김성근 한화 감독(왼쪽)과 박종훈 한화 단장.

 

지난 시즌만 해도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랐다. 현장 출신 단장은 두산 김태룡 단장, SK 민경삼 단장까지 단 두 명이 전부였다. 두 인물은 모두 은퇴 후 프런트 말단부터 시작해 단장까지 올라온 입지전적 인물이었고, 두산과 SK라는 구단의 내부적 특성이 크게 작용한 케이스였다. 그러나 올해는 다른 구단에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한화, LG, 넥센이 새로운 흐름에 동참했다. 여기에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이 민 단장의 뒤를 이어 SK 신임 단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 첫 시즌을 맞는 선수 출신 단장 4인의 성과에 벌써부터 기대와 관심이 모아질 정도다. 


# 한화 박종훈 단장이 새 바람의 진원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단장을 교체한 구단은 총 6개 팀. 신임 단장 6인 가운데 네 명이 선수 출신이라는 의미가 된다. 동시에 선수 출신 단장의 지분율이 20%에서 50%로 급격하게 늘었다. 프런트 내부에서 올라오거나 모기업에서 내려온 단장 5인과의 은근한 대결 구도도 벌써부터 형성됐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팀 한화가 새 바람의 진원지였다. 지난해 11월 전임 박종규 단장이 사업총괄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신 LG 감독 출신인 박종훈 신임 단장을 선임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성근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박 단장의 영입도 깜짝 공개한 것이다. 새 단장을 ‘모셔오는’ 이유도 자세히 설명했다. “김 감독은 ‘1군 감독’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고, 박 단장에게 선수단 운영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겨 내부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수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천명했다. 

박 신임 단장은 1983년 두산의 전신 OB에서 데뷔한 뒤 그해 신인왕과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스타 선수 출신이다. SK와 두산 2군 감독을 거쳤고, 2010년부터 2년간 LG 지휘봉을 잡았다. 한화 단장이 되기 전까지는 NC에서 육성본부장을 맡아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야구계에서는 한화의 단장 교체를 놓고 “김 감독 운신의 폭을 좁히기 위한 인사”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역할 구분을 확실히 하겠다”는 말은 곧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 이외에는 감독의 권한을 축소시키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어서다. 실제로 박 단장이 취임 이후 코칭스태프 재구성과 외부 선수 영입에 대한 김 감독의 요구를 대부분 단칼에 거절했다는 뒷얘기가 들려왔다. 단장과 감독 모두 불화설을 부인했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두 야구인의 팽팽한 신경전은 이미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사진] 조계현-염경엽-김태룡-박종훈 단장 / OSEN


# LG와 넥센, 그리고 SK 

한 달 뒤에는 LG가 부채질을 했다. 6년간 팀을 이끈 백순길 단장이 물러나면서 송구홍 운영총괄에게 새로 단장 역할을 맡겼다. 송 단장은 1991년 LG에 입단한 뒤 ‘허슬 플레이’의 대명사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던 내야수 출신이다. 해태(1998년)와 쌍방울(1999년)을 1년씩 거친 뒤 2000년 LG로 돌아와 은퇴했다. 이후 LG에서 코치, 운영팀장, 운영총괄을 역임했다.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에서 단장 자리까지 오른 첫 번째 케이스. 그 어떤 인물보다 선수단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새해에는 넥센이 고형욱 스카우트 팀장을 새 단장으로 임명했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남궁종환 전임 단장이 물러나면서 선수 출신인 고 팀장이 단장 자리로 올라섰다. 고 단장은 1994년 쌍방울에 입단해 1999년까지 통산 98경기에 등판했던 투수 출신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지도자 생활을 하다 2009년 넥센 스카우트팀에 입사했다. 한현희, 조상우, 김하성처럼 넥센의 기둥이 된 유망주들을 직접 뽑아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넥센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자체 육성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SK가 선수 출신인 민 전임 단장의 후임으로 염경엽 전 감독을 영입하면서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태평양과 현대에서 내야수로 뛴 염 감독은 현대와 LG에서 프런트 생활을 오래 했다. LG에서는 운영팀장까지 역임했다. 2012년 넥센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2013시즌부터 감독으로 발탁돼 지휘봉을 잡았다. 넥센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기도 했다. 

염 감독은 넥센이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뒤 패장 기자회견에서 자진 사퇴했다. 이후 시즌 내내 파다했던 SK 감독 이적설을 전면 부인하고 해외에서 야구 관련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다시 야구단으로 돌아왔다. 소문의 팀이었던 SK로 옮겼지만, 이번엔 감독이 아닌 단장이 그의 임무다. 

 

[사진] 양상문-고형욱-유영준 단장 / OSEN


# 김태룡과 민경삼이 닦아놓은 길 

선수 출신 단장들의 연이은 등장은 확실한 성공 사례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앞서 언급했던 두산 김태룡 단장과 SK 민경삼 전 단장이다. 두 사람이 오랜 기간 닦아 놓은 길 위로 다른 선수 출신 단장들이 걸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단들이 과감하게 선수 출신 인사를 선택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김 단장은 학창 시절 촉망 받던 야구선수였다. 부산 동성중 시절 김경문 NC 감독, 양상문 LG 감독과 함께 야구를 했다. 부산고 3학년 때인 1978년에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왕에도 올랐다. 그러나 동아대 2학년 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어깨를 크게 다쳐 야구를 그만뒀다. 1983년부터 7년간 롯데 스카우트로 일했고, 1991년부터 OB에서 선수단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운영팀에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고 역량을 쌓았다. 

지금 김 단장의 직위는 전무이사.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구단 임원 자리까지 올라왔다. 2011년 단장 선임 이후 현장 경험과 소통 능력을 앞세워 팀 운영의 큰 그림을 그려왔다. 두산을 상징하는 ‘화수분 야구’의 기틀을 확실히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독학으로 공부한 일본어 덕분에 내로라하는 ‘일본 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2016년 통합 우승은 그간의 노력을 총망라한 결과물. 야구계에 김 단장의 존재감을 더 확실하게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됐다. 

민 전 단장은 선수 출신 최장수 단장이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한 뒤 8년 만에 프로 선수 생활을 접었지만, 프런트로 시작한 새 인생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운영팀장, 경영지원팀장, 운영본부장을 비롯한 요직을 거쳤고, 2010년 1월 단장 자리에 올랐다. 그 후 지난해 12월 말 팀 성적 하락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할 때까지 7시즌 동안 단장 자리를 지키면서 SK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민 단장은 공격적인 트레이드로 팀 전력의 근간을 만들었다. 외국인 선수가 포함되거나 선수 여럿이 오가는 대형 트레이드를 과감하게 단행했다. 박재홍, 전병두, 정의윤, 전유수 같은 선수들이 모두 민 단장이 주도한 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다. 단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민 단장이 그 어느 스타 선수의 은퇴 못지않은 조명을 받은 이유다. 

# 선수 출신 단장들의 전망은? 

사실 김태룡 단장과 민경삼 전 단장은 유독 팬들의 손가락질을 많이 받은 단장이기도 했다. 선수 출신이라는 특성 탓에 지명도 자체가 다른 단장들보다 높았던 게 첫 번째, 그리고 그만큼 구단 운영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부분이 많았던 게 두 번째 이유다. 특히 감독 교체와 트레이드 결과에 따른 평가는 단장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김 단장은 두산의 전임 감독들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악성 댓글 세례에 시달려 편두통을 달고 살았고, 민 전 단장은 김성근 감독이 SK 지휘봉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김 감독의 사퇴를 반대하는 팬들의 극렬한 반대 시위에 부딪혀 곤욕을 치렀다.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 선수 출신 단장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될 과정이다. 일부 ‘낙하산 단장’들이 하지 못했던 진짜 단장의 임무를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그만큼 책임질 부분도 많아진다. 선수 출신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쌓은 능력이 ‘직업적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온 대신, 팀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이 감독 한 사람에게만 몰리는 풍토도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권리가 늘어나면 책임도 비례해 같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SK가 염 신임 단장과의 계약기간을 이례적으로 ‘3년’이라 명시한 점도 이런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그 기간 동안의 성과에 대해 단장에게도 확실한 공과를 묻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결과가 좋으면 더 많은 권한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더 높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올해 선수 출신 단장들이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탄생할 새 단장들의 얼굴도 달라질 수 있다. 만만치 않은 시험대, 그러나 도전할 가치가 있는 숙제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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