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 야구

[정근우] 실수는 피하는 게 아니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

econo0706 2022. 9. 15. 23:32

2022. 02. 08

 

프로야구 시즌 개막의 예고편인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코로나 19 탓으로 국외 캠프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 안타깝고 아쉽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10개 구단 모두 국외가 아닌 국내에서 캠프지를 차렸다. 게다가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서 여러 구단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스프링캠프조차도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쉽지 않은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나는 프로야구에서 16시즌을 뛰며 미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 등에서 스프링캠프를 경험해봤다. 국내와 국외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리는 것에 따른 장단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날씨. 아무래도 이맘 때쯤 국내는 따뜻한 곳에서 한다고 해도 추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주로 실내에서 연습을 소화하게 된다. 그것도 투수와 야수 등 각 파트별로 연습을 하므로, 새로 들어온 선수(이적 선수나 신인 선수 등)를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그 기량이나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에 스프링캠프는 대개 3일 연습 후 휴식을 취한다. 즉, 3일 연습한 후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몸을 만드는 스프링캠프라기보다는 원정 경기를 치르는 느낌이 들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한화 이글스의 스프링캠프 광경 / 사진=한화 제공

 

구단에 따라서는 퓨처스 경기장을 1차 스프링캠프지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선수에게 퓨처스 경기장은 익숙한 곳이다. 사람은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기 어렵다. 분명히 퓨처스 경기장이 다른 곳보다 시설 등은 잘 되어 있더라도,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분위기 조성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나도 과거 한화 시절에 시즌이 끝난 후 마무리 훈련을 제주도와 서산에서 한 적이 있다. 익숙한 곳이라서 마음을 다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은 퓨처스에서 처음으로 1군 캠프에 올라온 선수는 더 할 것이다. 1군 캠프에 합류한 기쁨과 설렘 속에 참가했는데, 연습하는 곳은 항상 땀을 흘리는 퓨처스 경기장.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곳에서 “올해 한 번 해보자”라는 도전하는 마음가짐을 갖기는 어렵다.

 

그래서 KBO리그 코칭스태프는 국내보다 국외 스프링캠프를 선호한다고 본다.

 

실수를 먹고 자란 신인 듀오

 

스프링캠프에서 경험이 적은 신인이나 신예 선수가 무리해 부상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잦다. 그 이유는 스프링캠프에서 전력을 다할 몸 상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계속해서 전력을 다하다 보니까 몸에 무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선수라면 누구나 퓨처스리그가 아닌 KBO리그에서 뛰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우선은 1군 캠프에서 인정을 받아 개막전 로스터에 들어가려고 한다. 개막전 로스터에 들지 못하더라도,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찍으면 시즌 도중에라도 KBO리그에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 그렇기에 신예들은 오늘만 살게 된다. 죽자 살자 한다. 그것을 몸이 버티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기의 문제일 뿐) 부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신예들은 스프링캠프에서 페이스를 조절하거나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는 이도 있다. 경험이 적은 신예 가운데 자기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또한 프로야구라는 세계는 자기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밥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녹록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그 신예가 1군 캠프에 합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까. 그렇기에 자제는 그 신예가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부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신예는 어렵게 온 1군 캠프에서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찍어 꿈에 그리는 KBO리그 무대를 밟고 싶다는 열망에 차 있다. 그렇기에 좀 무리하더라도, 참고 버티어 내려고 한다. 여기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면 ‘한때 프로야구 선수’로 끝나게 된다. 그런 냉혹한 세계에서 자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 SK 와이번스 시절의 정근우 / 사진 - SK 제공

 

돌이켜보면 나와 최정은 “이런 신인은 두 번 다시없다”할 정도로 많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1군 캠프에 합류한 신예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말보다는 몸으로 느껴라”이다. 주위의 좋은 조언을 가려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몸을 배우는 게 제일 좋다. 지금부터 그려갈 인생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인생이다. 사람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실패해보면서 성장하는 법. 일본 야구계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사지 않은 복권은 당첨되지 않는다.” 복권의 당첨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그 복권을 샀을 때 당첨될 가능성도 생긴다. 복권을 사지 않으면 당첨은 꿈도 꿀 수 없다.

 

그처럼 몸소 해보면 잦은 실패에 실망도 하지만 그 경험이 쌓이며 성장하게 된다. 젊으니까 실수나 실패할 권리가 있다. 매년이 승부인 베테랑에게 실패란 곧 은퇴로 직결하지만 신예는 그렇지 않다. 기회가 왔을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나는 물론이고 리그 최고 타자인 최정도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성장했다.

 

나와 최정은 나이는 다르지만 입단 동기생이다. 최정은 1차 지명자이고, 나는 2차 1라운드에 지명을 받았다. 그만큼 팀의 기대도 커 입단과 동시에 3루수 주전 후보로 주목받았다. 플로리다에서 열린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는데, 나도 최정도 3루에서 1루로 던지는 족족 악송구를 범했다. 10개 던지면 예닐곱 개는 1루수가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플레이를 펼쳤다.

 

잇따른 실수에 실망도 했지만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닌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혹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실수는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쓴맛, 단맛 다 본 일본 고치 캠프

 

국외 스프링캠프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일본 고치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항상 고치에서 1차 캠프를 치렀다. 고치 야구장에 도착하면 지역 주민들이 환영식을 열어준다. 선수단이 자고 먹는 것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환영식을 할 때마다 생각한 것이 고치 관계자의 환영사와 김성근 감독의 답례가 너무 빨리 끝난다는 것. 왜냐하면, 환영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연습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각각의 선수에게 답례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캠프 기간 내내 하지 않았을까. 아, 물론 ‘단답형 사나이’ 최정이 관건이지만(웃음). 김성근 감독의 지옥 연습에 맞선 선수들의 필리버스터. 그런 상상도 해본 적이 있다.

 

확실히 매년 고치에서 한 지옥 연습이 내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힘든 게 힘들지 않은 게 되지는 않는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다. 그 지옥 연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스프링캠프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하얀 도화지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순백의 도화지인 만큼 여러 색깔로 채워 넣을 수 있다. 또 아무것도 그려진 것이 없으므로 힘든 과정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였다. 그런 마음가짐이 스프링캠프에서는 필요하다고 본다.

▲ 한화 이글스 시절의 정근우 / 사진=한화 제공

 

김성근 감독과 함께하던 시절, 스프링캠프의 시작은 지옥문이 열린 느낌이었다. 하루라도 유니폼이 깨끗한 날이 없었다.

 

지옥문이 열린 스프링캠프에서도 즐거움은 있었다. 쉬는 날, 지역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치에서 기억에 남는 가게가 3곳이 있다.

 

첫 번째는 야타이 야스베 교자 집. 하루는 길을 걸어가는데 낮 시간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 무슨 일이 있는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교자를 먹으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는 것이었다. ‘교자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느냐?!’라고 생각했는데….

 

야스베 교자는 튀긴 것과 구운 것 2종류가 있는데 어느 것이나 맛있다. 만두피가 얇아, 한입 베어 물면 살얼음이 깨지듯 바싹 소리가 나고 입 안 가득 부추와 마늘의 풍미가 퍼진다. 지금, 그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다.

 

두 번째는 오리엔트 호텔 앞에 있는 생선회집이다. 그날 잡은 생선만 회로 내주는데 매우 두껍게 써는 게 특징적. 회가 두꺼운 만큼 씹는 맛도 있지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아 푸른 바닷속에 있는 듯하다.

 

세 번째는 호텔 이름은 까먹었는데, 그 앞에 있는 초록색 간판이 특징적인 꼬치집이다. 처음 여기를 갔을 때는 이것저것 다 시켜 먹었는데, 그다음부터는 닭꼬치만 시킨다. 우리가 거기 가면 난리가 난다. 특급 손님이 왔다고. 왜냐하면, 야구 선수라서 당연히 엄청 많은 양을 먹으니까, 주인으로서는 큰손이 온 거니까.

 

테이블에 앉자마자, 일단 닭꼬치 50개를 주문한다. 그걸 단숨에 먹어 치운 후 곧바로 100개를 추가 주문하는 식으로 한 번 갔을 때 서너 명이 300개 정도를 먹는다. 진한 소스가 정말 별미였다.

 

일본 음식점에서는 서비스가 거의 없지만 이렇게 팔아주니까 우리가 가면 이것저것 서비스로 많이 내준다. 매년 같은 곳을 가는 만큼, 기간 한정이라도 단골로 가는 곳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과도 차츰 거리를 좁혀가며 알아가게 된다. 팀도 마찬가지다. 이적생이나 신예가 기존 선수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스프링캠프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팀 캐미스트리를 좋게 해 그해 우승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전력으로 달려가게 된다. 즉,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계기를 만드는 게 스프링캠프다.

 

코로나19로 2년 연속 국내에서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다. 선수단이 무탈하기를, 그리고 코로나19가 빨리 끝나 일상이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지옥 연습이 없는 고치는 어떤 풍경으로 나를 맞이할까. 코로나19가 끝나면 한번쯤 다녀오고 싶다.

 

정근우 / 전 프로야구  선수, 현 최강야구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