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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내시의 금의환향(錦衣還鄕) 5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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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물소뿔을 얻기 위한 조선 정부의 피나는 노력을 말한 적이 있었다. 각궁(角弓)을 주력병기로 사용하는 조선에게 있어서 물소뿔은 곧 국방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조선 초에는 대충 얼렁뚱땅해서 물소뿔을 구해서 활을 만들었는데, 세종 31년 1449년에 덜컥 일이 터져 버렸으니, 바로 ‘토목의 변’으로 알려진 명나라 영종(英宗)의 납치사건이었다.(토목에서 오이라트 족의 수장인 에센과 영종이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 영종이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문제는 이 ‘토목의 변’이 애꿎은 조선의 각궁(角弓)에까지 불똥이 튀었으니,

 

“울리 나라 황제가 잡혀갔다 해! 앞으로 군사무기, 군사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의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겠다 해!”

 

이리하여, 각궁의 주원료인 물소뿔의 수출이 엄격히 제한되게 되었다. 그러나 활 하면 조선, 조선하면 활이던 상황에서 주력병기인 각궁을 쉽게 포기 못한 조선은 몰래몰래 밀수를 하기로 결정, 물소뿔의 밀수를 시작하였는데…성종8년 1477년, 덜컥 물소뿔을 밀수하던 조선의 역관들이 걸려들었던 것이다.

 

“조선놈들 너네 잘못 걸렸다 해! 감히 물소뿔을 밀수하려 했다 해? 네들 다 죽었다 해! 물소뿔도 압류다 해!”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선 정부는 유일한 비빌 언덕인 윤봉을 찾게 된다.

 

“하…자식들 어디 밀수 할게 없어서 물소뿔을 밀수 하냐?”

 

“그게…또 국방에 관련 된 일이라서….”

 

“알았다 해. 내가 한번 알아보겠다 해.”

 

이리하여 윤봉은 로버트 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맹활약을 하게 되었으니, 당시 물소뿔에 대한 명나라 조정의 분위기, 수입 쿼터의 상한선, 이에 따른 물소뿔 수입 금지 조치의 해제 방법까지 조목조목 조사하게 되었다.

 

“이게 말야…내가 알아본 바로는 무턱대고 뿔 달라믄 안 줄거 같거덩? 일단은 뭐 이렇게 나가보자고, 이걸 안준다고 손가락 빨 조선이 아니니까, 무턱대고 규제하지 말고, 제한을 하자고 황제를 꼬드기는 거야. 일단은 한 50부 정도…그래, 50부 정도로 교역을 열어달라고 주청을 하는 거야.”

 

“아니, 50부로 누구 코에 붙인다고….”

 

“이 자식이…일단은 마 거래를 트는게 중요하잖아! 일단 거래 트고 나면, 그때가서 차츰 교역량을 늘려달라고 꼬드겨 보자고, 오케바리?”

 

이리하여 조선 조정은 윤봉의 측면 지원사격을 배경으로 수입 금지 조치를 수입 규제조치로 바꿔 달라는 사신을 계속 보내게 되는데…

 

“아잉…황제폐하, 저희도 나라 지켜가며 살아야 하잖슴까? 무조건 안된다고 하시믄…저희는 뭘 믿고 싸웁니까? 한번만 봐 주십쑈.”

 

조선 정부의 아양에 황제는 넘어가게 된다.

 

“알았다 해. 그럼 1년에 50부 정도만 거래하라 해.”

 

이렇게 물꼬를 튼 조선은 그 3년 뒤 윤봉에게 다시 매달리게 된다.

 

“이 정도면 분위기 무르익지 않았슴까?”

 

“그려, 한 3년 했으니까 이제 좀 거래량을 늘려달라 하자고”

 

이리하여 윤봉은 다시 한번 황제의 옆구리를 찌르게 되었고, 황제는 못 이기는 척 1년에 물소뿔 150부 정도의 거래는 허가한다고 칙명을 내리게 된다. 그야말로 로버트 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대활약이었다.

“이게 다 윤태감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뭐 한 일이 있다고…. 앞으로 밀수 같은 거 하지 말고…또 어려운 일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 알았지?”

 

그렇게 윤봉은 조선조정의 비빌언덕으로 확고히 자리메김 하게 되는데…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9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 윤봉은 황제에게 은퇴를 요청하게 된다.

 

“폐하, 거시기… 제 나이도 90이 넘었슴다. 이제 은퇴를 해야 할 거 같은데요?”

 

“그려…. 고생 많았어. 저기 일단 퇴직금 정산하고….”

 

“거시기, 그 전에 말임다…제 고신(관직 임명장)을 좀 거둬 주실래요?”

 

“아니 그건 왜?”

 

“거시기…지금 제 직책이 따져보니까, 조선 왕이랑 쌤쌤이던데…은퇴해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무래도 왕이랑 같이 먹는 자리면…조선 왕 체면도 있구 해서….”

 

“자식 이거, 알고 보니 진국이네? 알았어. 네가 해달라는데로 해줄께.그 동안 고생 했다.”

 

이렇게 해서 윤봉은 성종 14년 꿈에 그리던(?)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조선은 그 동안 로버트 김에 버금가는 대활약을 해준 윤봉을 위해 대대적인 축하파티를 열어준 것 뿐만 아니라 땅과 노비를 내려주었고, 아버지에겐 정평공(貞平公)이라는 시호를, 형에게는 과의장군이라는 벼슬을 내려주며 그 동안의 조국에 대한 봉사를 보상해 주었다.

 

조선에 태어나 사내구실도 못하는 상황도 서러운데 명나라에까지 끌려가야 했던 조선 출신의 명나라 내시들…. 처음에는 자신을 버린 조국에 대한 원망도 했었고 복수도 했었지만, 역시 조국은 조국이었던 것이다.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 윤봉의 모습 속에서 조국을 위해 옥살이를 했던 로버트 김의 얼굴을 떠올린다면, 비약이 너무 심한 것일까?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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