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마디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었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0) | 2007.02.18 |
---|---|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0) | 2007.02.18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0) | 2007.02.17 |
밤바다 - 박재삼 (0) | 2007.02.17 |
갈대 - 천상병 (0) | 2007.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