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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우리말 간판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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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명나라에 사대했던 조선조에 있었던 일이다.

 

명나라 사신을 향응하는 술상에 숭어찜이 올랐던 것 같다. 먹어보고 맛이 좋았던지 그 생선 이름을 물었다. "수어라고 합니다"고 대답하자, 이 사신 학식이 짧았던지 물에서 자란 생선 치고 수어 아닌 것이 없는데 어찌 이 생선만을 수어라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 숭어를 한문으로 수어라고 하기에 수어인데도 사신이라는 위엄에 눌려 사실대로 그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 후로 시서에 숭어를 쓸 때 물수 수어로 쓰는 것이 시체에 알맞고 고급스러운 표현이 돼 내렸던 것이다. 사신은 천자를 대신한 사람이요, 천자가 하는 말은 틀려도 진리라는 찌든 사대주의가 수어의 표기까지 바꿔놓았던 전통사회다.
 
양식집에 가면 종업원은 빵이냐 라이스냐를 묻게 마련이다. 밥으로 달라고 하면 굳이 라이스 말이죠 하고 반문하게 마련이다. 밥과 라이스는 다른 식품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라이스가 밥보다 고급이라는 사대병의 보편성을 말해주는 것이 되며, 수어가 숭어보다 고급이라는 생각과 피장파장이다.
 
이처럼 사대의 후광을 받음으로써 비리도 진리가 되고, 낙후했던 것도 첨단이 되며, 희미했던 존재도 부각이 되고, 없었던 위상도 높이 떠오르는 것이 우리의 버리고 싶은 사고방식의 하나였다. 오랜 중국 사대에 찌든 데다 일본제국주의 압제가 그 사대근성을 유지시키더니, 광복 후에 비어버린 그 커다란 정신적 공동에 구미문물에의 사대가 통째로 들어앉아 자리바꿈을 했다. 그 표출 가운데 하나가 간판 표기다.
 
대도시 상가의 외래어 간판이 81.2%라는 보도가 있었다. 외래어로 간판을 해 달면 고급으로 여기고 격이 높아지는 것으로 여기는 시민의 성향에 부합한 것으로 외래선망이나 사대주의가 극에 다다랐다는 증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예상 사대주의에 오차가 생겨나고 있다. 한국말 간판에서 외래어 간판으로 바꾼 집의 영업실적보다 외래어 간판에서 한국말 간판으로 바꾼 집의 영업실적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는 조사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간판을 지어 단 사람의 생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생각에 못미쳤다는 것이 된다.
 
우세(優勢)문명은 흡수해야지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다. 그 한계라도 보는 듯한 우리말 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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