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5. 11
변화와 리빌딩을 함께 꿈꾼 삼성에게 이번 시즌도 결과는 아쉬움이었다.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일찌감치 순위 경쟁에서 떨어져 나왔다.
시즌 전부터 외부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도전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탈꼴찌도 쉽지 않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시즌 초반 LG, 현대모비스와 함께 반전의 주인공이 되는 듯 했지만 기적은 없었다.
하지만 객관적 전력의 열세 속에 숱한 악재란 악재는 모두 만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법'을 찾아간 삼성은 이전의 무기력하던 색깔과는 어느 정도 차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새 시즌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랐던 2016-2017시즌 이후 삼성은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정규리그 성적은 2년 연속 최하위와 함께 '7977-1010'이라는 새로운 숫자를 만들었다. 일단 지난 2021-2022시즌의 실패는 충격이 컸다.
삼성은 지난 시즌 역시 객관적 평가에서 리그 최약체로 평가 받았다. 1라운드에만 4승을 올리며 주변의 평가를 불식시키는 듯 했지만 2라운드에 아이제아 힉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팀은 급격히 흔들렸다. 초반 8경기에서 4승을 거둔 삼성은 이후 46경기에서 단 5승을 더하는 데 그쳤다.
비시즌부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며 정상적인 훈련에 차질을 빚었고, 시즌 전 열린 KBL 컵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선수의 음주 사태가 두 번이나 발생했고, 이로 인해 2014년부터 팀을 이끌었던 이상민 감독이 물러났다.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한국 농구 최고의 명문이라고 자부했던 삼성의 명예가 산산이 부서진 한 해였다.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신임 감독으로 은희석 연세대 감독을 임명했다. 부침을 겪던 연세대의 혼돈을 수습하고 전통의 명문을 다시 반열에 올려놓은 대학농구 명장을 수장에 앉히며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FA 시장에서도 움직였다. 노장이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선수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베테랑 이정현을 영입했고 주장을 맡겼다. 지도자와 선수 모두 중심인물과 색깔에 변화를 가져갔다.
삼성으로서는 반드시 필요한 변화였다. 단순히 순위 싸움에서의 아쉬움만 남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삼성은 경기 내용에서도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했다.
4쿼터만 되면 상습적으로 무너지며 '농구를 30분만 해야 하는 팀'이라는 비난을 들었고, 승부처만 되면 작아지는 선수들의 모습은 심지어 '워크 애식'의 문제까지 지적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쇄신은 필수였다.
'주인공이 아니면 빌런이라도'
은희석 신임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꾸준히 투지와 근성을 강조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시대는 지났고 추상적인 정신력보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부분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 스포츠에서 어쩌면 뜬구름잡기 같은 공염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이기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다.
언제부턴가 삼성은 성적 여부를 떠나 '훈련 강도가 낮고 선수들이 편하게 운동하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7-2018시즌부터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지만,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팀 내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에게는 억울한 시선이었겠지만, 시즌에 나타난 경기력은 무기력했고 이는 2021-2022시즌, 정점을 찍었다.
은희석 감독은 객관적으로 삼성의 전력이 하위권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력이 하위권이라고 성적도 그렇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됨을 강조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이기는 경기를 하고, 비록 패하더라도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빌런이라도 되어야 한다며 팀 컬러의 변화에 주력했다.
은희석 감독이 바란 변화는 분명 나타났다. 결과는 2년 연속 최하위였지만 내용에는 차이가 있었다. 지난 해 삼성은 팀 득점은 가장 적었고 실점은 가장 많았다. 득실 마진이 -11.4였다.
이번 시즌에도 득점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실점은 대폭 줄었다. 삼성을 만나는 팀들마다 "비록 성적은 10위지만, 만날 때마다 힘든 경기를 한다"며 투지와 끈기를 인정했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이어졌던 무기력함과 근성 없는 팀의 이미지를 지우는 데에는 분명 성과가 있었던 시즌이다.
1라운드 분전, 안타까운 엔딩
전력 면에서 하위권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스타트는 좋았다. 1라운드 4승을 거뒀던 지난 시즌보다 한 발 더 나아가 6승을 수확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돌풍은 1라운드에서 멈췄다. 2라운드 이후 단 한 번도 3승 이상을 수확한 라운드가 없다. 4라운드는 전패로 끝났다.
상승세가 이어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번에도 부상이었다. 1년 전 핵심 외인 힉스의 부상이 치명타였다면 이번에는 연쇄 부상이 문제였다.
팀의 1번을 맡아야 하는 김시래, 이호현, 이동엽이 부상으로 모두 빠졌다. 은희석 감독은 비시즌 준비과정에서 선수가 뛰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가드 포지션의 대안을 마련했었지만, 그 대안에 해당하는 선수들까지 한꺼번에 부상을 당했다.
시즌 초반 주득점원 역할을 했던 외국 선수 마커스 데릭슨도 부상으로 떠났고, 막판에는 다랄 윌리스도 부상을 당했다. 이원석도 부상으로 40경기를 채우지 못했고 트레이드로 영입한 최승욱도 부상을 당했다. 시즌 막판 은희석 감독은 시즌 중 부상으로 경기에 결장한 선수가 10명이 넘는다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복귀하는 선수들도 완전치는 않았다. 비시즌 연습 경기 때 좋은 슛감을 보여줬던 김진영은 징계를 끝내고 복귀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완전치 못했고, 부상에서 복귀한 차민석도 가능성을 증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KBL에 새로운 변수가 됐던 필리핀 아시아쿼터도 삼성에게는 상처였다. 이번 시즌에 아시아쿼터를 활용하지 않은 팀은 SK와 삼성뿐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SK는 활용하지 않았고, 삼성은 활용하고자 했지만 못했다. 무려 3명의 필리핀 선수를 선택했지만 모두 불발됐다.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일찌감치 계약한 필리핀 국가대표 윌리엄 나바로는 필리핀 농구협회에서 이적 동의서 발급을 거부하면서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삼성은 FIBA에 유권해석까지 요청했지만 끝내 나바로 영입은 실패했다.
이후 미국 버틀러 대학 출신의 크리스찬 데이비드를 영입했지만 완전치 못한 몸 상태로 인해, 팀 합류 후 훈련만 하다가 정규 경기는 단 1초도 뛰지 못하고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저스틴 발타자르와 계약에 합의했지만, 이번에는 발타자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약속한 입국 기한을 어겼다. 삼성은 선수등록 마감기한까지 발타자르를 영입하지 못하면서 결국 아시아쿼터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KBL 1군 무대를 뛴 필리핀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총 7명. 이 중 시즌 전부터 팀에 합류한 5명은 모두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팀의 주축으로 자리를 굳힌 선수도 있다. 시즌 중에 영입된 2명의 선수는 먼저 온 선수들만큼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리그 적응과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는 변수를 고려할 때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유독 삼성만 필리핀 아시아쿼터에서 3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외국 선수도 아쉬웠다. 삼성은 이매뉴얼 테리와 데릭슨으로 시즌을 시작해 일시 대체였던 조나단 알렛지, 그리고 윌리스와 앤서니 모스까지 5명의 외인으로 한 시즌을 보냈다.
기량 미달과 부상 등으로 아쉬움이 있었다. 팀의 가장 확실한 옵션이 되어야 하는 외국 선수의 안정감 부족은 결국 경쟁력에서 밀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은희석 감독도 프로 감독 첫 시즌을 보내며 외국 선수 선발에서 조금 더 다른 시선을 가져가야 할 것 같다며 이 부분에서의 전환을 예고했다.
반등을 위해 필요한 전력 보강
지난 몇 년간 삼성이 보여줬던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삼성이 앞으로 반전과 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약점은 여전하다. 뛰어난 외국 선수와 성공적인 아시아쿼터의 영입도 필요하지만 국내 선수의 보강도 분명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은 지난해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FA 시장에서 이정현을 영입했다. 그 노력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특히 올해는 빅 네임들이 많이 등장하는 FA 시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차민석, 이원석, 신동혁 등 젊은 유망주들을 잘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긴 시간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에서 어린 선수들이 팀의 기대치에 걸맞게 올라서는 것 자체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삼성을 대표하는 선수인 이정현과 김시래는 모두 30대 중반이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전력 평가와 시장 분석을 통해 팀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중견급 선수의 영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팀 MVP | 이정현
- 54G 11.7점 2.8리바운드 3.9어시스트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번 시즌 삼성의 MVP를 언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시즌이다. 승부처에 역할을 해줘야 했던 선수들은 임팩트가 떨어지거나 꾸준하지 못했다.
그래도 줄부상으로 팀이 어려움을 겪었던 이번 시즌, 여전한 '금강불괴'로 54경기를 모두 출전하며 버텨낸 이정현이 가장 빛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즌 삼성에 이정현마저 없었다면 더욱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했을 거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다.
팀 RISING STAR | 신동혁
- 54G 5.7점 1.7리바운드 0.8어시스트
삼성에서 이정현과 더불어 이번 시즌 정규리그 전 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신동혁이다.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지명된 신동혁은 루키 시즌 활약만 놓고 보면 가장 인상적인 신인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1년을 보냈다.
필리핀 선수들의 대거 등장으로 신인상 기회는 놓쳤지만, 무려 985분을 활약하며 국내 신인 선수들 중 압도적인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다. 삼성의 새로운 에너자이저로 인정받은 신동혁은 다음 시즌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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