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하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장마에 밀린 빨래를 하던 날 아침 다래헌(多來軒)에 참외장수가 왔다.
노인은 이고 온 광주리를 내려놓으면서 단 참외를 사달라고 했다. 경내(境內)에는 장수들이 드나들 수 없는 것이 사원(寺院)의 규칙으로 되어 있지만, 모처럼 찾아온 노인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일금 40원을 주고 두 개를 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돈을 받아 쥔 노인은 돈에 대고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이 하도 엄숙하기로 차마 연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며칠 후, 일주문(一柱門) 밖에서 그 참외장수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왜 돈에 침을 뱉었느냐 물으니 그날의 마수걸이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 잘 팔리더냐고 했더니 아주 재수가 좋았다고 한다.
그때 돈에 침을 뱉던 그 엄숙한 표정과 비슷한 모습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억을 잡느라고 나는 한참 맴을 돌았다. 그렇지, 삼청동 뒷산에서였지.
칠보사(七寶寺)에서 기식(寄食)을 하던 시절, 이른 아침 산에 오를 때마다 본 일이다. 바위 틈에서 아낙네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리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때로는 무당들이 골짜기가 떠들썩하게 징을 쳐가면서 신명을 풀기도 했다. 더우기 입시 무렵에는 인왕산 일대와 함께 '야외음악당' 구실을 한다는 것.
근대화로 줄다름치고 있는 조국의 수도권에서 이와같은 무속(巫俗)이 건재하고 계신 것을 보고 대한민국의 신시(神市)는 계룡산이 아니라 바로 서울이구나 싶었다. 이 신시의순례자들은 서민층만이 아니고 높은 벼슬아치의 댁내들께서도 가끔 동참하고 있다는 데는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와 미신의 분수령(分水嶺)에는 여러가지 팻말이 박혀 있겠지만, 그중에는 정(正)과 사(邪)도 있을 법하다. 구하는 바가 청정하고 바른 것이냐, 아니면 삿되고 굽은 것이냐에 따라 그 길은 갈라질 것이다.
절간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도 사원을 예(例)의 신시로 잘못 알고 오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류의 승려들은 자기 본분을 망각한 채 관상을 보고 사주팔자를 곰작거리며 작명(作名)의 업(業)을 벌임으로써 엉뚱한 길로 오도(誤導)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종교와 미신의 촌수는 실로 모호하다. 이러한 소지가 남아 있는 한 가짜 사기승이 나올만도 하지 않은가.
오늘 아침 그 노인이 또 나타났다. 이번에는 복숭아를 이고 왔다. 이러다가 갈아주는 호의가 동업자로 변질되고 말 것 같다.
1969년 8월 3일
法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