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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해제일미(解制一味)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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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해제(解制) 다음날 새벽, 첫자를 타기 위해 동구(洞口)길을 걸어나올 때, 아, 그것은 승가(僧迦)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홀가분한 단신(單身)의 환희, 창공을 나는 학의 나래 같은 것. 
 
새벽달의 전송을 받으며 걸망을 메고 호젓이 산문(山門)을 벗어나면 나그네는 저절로 활개가 쳐진다. 90일 안거(安居)는 이때를 위한 움츠림인가. 마냥 부푸는 가슴, 영원한 머시매들의 설레는 몸짓. 만약 걸망 대신 가방을 들었거나 두번째 차편이라면 그 해방감은 절반쯤 꺾이리라.
 
누가 어디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쁜 것이다. 족행신(足行神)의 사촌쯤 되는 '걸망귀신'은 해제일(解制日)이 가까와오면 빨래를 한다, 누더기를 꿰맨다 하여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이다. 더러는 흩어진 도반들에게 사연을 띄우기도 하면서.
 
우선 첫 기항지는 해안선(海岸線), 바다가 가까운 아랸야[寂靜處]. 식성을 알아주는 허물없는 도반을 찾아가 짐을 푼다. 거기에서 싱싱한 새봄의 미각(味覺)을 즐긴다. 겨우내 신 김치가 지배하던 무표정한 식탁 대신 바다에서 건져온 싱싱한 해초(海草). 생미역 쌈을 싸면 문득 해조음(海潮音)에 섞여 갈매기소리가 들려 온다.
 
먼길의 나그네는 노상 바쁘다. 이내 길을 떠난다. 이래서 거리에는 한동안 먹물옷이 오고 가리라.
 
"진정한 해제자(解制者)란" "생사가 신속하니
 
준엄한 훈시는 잠시 다음 결제(結制)로 미루자. 그새 초하루 보름마다 익히 들어 왔으니 사문(沙門)은 해제기간이라 해서 거저 노는 것은 아니다. 행각을 통해 널리 보고 듣고 또한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대지에서 햇볕을 쪼이고 바람을 쏘여야 한다. 저만치 앞서 달리는 현대의 속도(速度)를 감촉하게 하라. 까맣게 잊어버린 시간을 읫기하게 하라. 닫힌 일상과는 너무나 사이가 뜬 그 흐름레 부딪쳐보라.
 
그리하여 독선적이고 옹졸해지기 쉬운 수도승적인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지금 우리는 어떠한 세계 안에 있는가를 우물 밖 시력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해제일미(解制一味)는 결코 결제의 정진과 무연하지 않다. '길'은 좌청룡 우백호의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로다.
 
1968년 2월 25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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