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8. 31
호랑이 굴의 주인은 철인이었다. 울산현대가 홈경기장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포항스틸러스에 3연패를 당했다. “포항스틸러스에 ‘잘가세요’ 노래 한번 불러주고 싶습니다.”던 울산현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울산현대는 포항스틸러스 팬들이 꺼내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수막을 구슬프게 바라보며 ‘잘있어요’라는 노래를 들어야 했다.
울산은 31일 포항과 치른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2014’ 23라운드 경기에서 1-2로 역전패했다. 전반 26분 김신욱이 헤딩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으나 곧바로 전반 29분에 강수일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후반 3분에 김재성의 발리 슈팅까지 내주며 리드를 빼앗겼다. 포항은 후반 21분 수비수 베슬기가 퇴장 당하는 수적 열세 상황을 맞았지만 마지막까지 리드를 지켰다.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울산 골키퍼 김승규는 상대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무릎을 꿇었다.
울산과 포항의 경기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동해안 더비로 지칭한 클래식 매치다. 한국 프로축구사의 결정전 순간에는 늘 두 팀이 있었다. 지난 해 리그 최종전에서 외나무 다리 승부를 벌인 것도 두 팀이다.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선두 자리에 있던 울산은 안방에서 포항에 패하며 우승컵을 내줬다. 당시 경기장을 찾은 관중수는 23,012명이었다.
평균관중이 1만 명을 넘지 못하는 울산의 최대 흥행 카드는 포항전이다. 지난 7월 12일에 열린 포항과의 홈 경기에 16,216명이 찾아 시즌 최다 관중이 모인 바 있다. 31일 경기에도 15,147명이 찾았다. 울산의 올 시즌 최다 관중 경기 1,2위가 모두 포항전이다. 평균 관중인 7,487명 보다 두 배 이상이 많은 수치다. 울산은 이날 경기를 하루 앞두고 올 시즌 처음으로 미디어 데이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20명에 이르는 취재진이 울산에 모였다.
대관중의 기대는 좌절됐다. 7월에 이어 8월에도 안방 포항전의 결과는 패배가 됐다. 울산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포항 원정을 떠나 1-0 승리를 거두며 작은 설욕에 성공했던 울산은 안방에서만 포항에 3연패를 당하며 호랑이굴 안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조민국 울산 감독은 “우려한 부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답답한 경기였다. 반성해야 한다”며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쓴맛을 다셨다. 경기 전 조 감독은 공격진의 부족한 결정력과 수비진의 집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준비와 훈련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풀지 못했다.
울산은 김신욱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역습 상황에서 두 골을 내주며 주도권을 내줬다. 이날 울산은 유준수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혹서기에 많은 경기를 뛴 수비수 김근환을 명단에서 제외하고 휴식을 줬다. 김근환은 하프타임에 울산 7월의 수비수상을 받았는데, 경기장 안에서의 그의 활약이 간절했다.
조 감독은 “선제골을 넣기 전에도 수비수들이 너무 물러선다고 밖에서 지적을 많이했는데, 그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며 실점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설명했다. 더불어 전반전 도중에 타박상을 입은 주장 김치곤을 일찍 빼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후회를 나타냈다. “김치곤은 부상 때문에 뺐다. 전반전이 끝나고 뺐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김치곤의 상태가 안좋다보니 역습 상황의 두 번째 골을 내줬다.”
역전을 당한 뒤에는 울산이 맹공을 퍼부었다. 이날 포항 수비진은 박희철, 김광석, 배슬기, 손준호 등이 차례로 경고를 받으며 거친 모습을 보였다. 발재간이 좋은 따르따와 고창현이 여러 차례 포항 수비를 흔들었다. 그 결과 후반 21분에 두 번째 경고를 받은 배슬기가 퇴장을 당했다. 수적 우위의 울산이 이후 경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무려 18차례나 시도된 울산의 슈팅 중 골문으로 향한 것은 단 6개에 불과했다. 포항은 10개의 슈팅 중 5개의 유효 슈팅을 창출하며 훨씬 더 날카로운 공격을 보였다. 울산이 성공한 6갱의 슈팅도 김신욱의 득점을 제외하면 신화용 포항 골키퍼를 위협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정면으로 향해 막아내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골 결정력에 대한 문제 역시 조 감독이 속앓이를 하던 부분이다. 조 감독은 경기 전 “매 경기 완벽한 노마크 상황이 나오는 데 골을 넣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조 감독은 올 시즌 영입해 포항전에 기용한 중앙 미드필더 서용덕과 백지훈에게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주문하고 있다. 굳이 이들을 데려온 이유가 경기 운영이나 패스를 떠나 강점인 대포알 슈팅으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두 선수는 이날 세 차례 슈팅을 시도했으나 모두 허공을 갈랐다.
경기 후에도 “슈팅 연습을 많이 했다. 김선민이나 백지훈, 따르따 등이 나름 슈팅 연습을 했는데 골대 안으로 차지 못해 아쉽다. 골대 안으로 차야 골이 되지 않아도 세컨드볼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심각한 골 결정력 부족에 조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떨구는 일 뿐이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양 팀 선수들 모두를 흥분시킨 부정확한 판정이었다. 이날 경기에 많은 오심과 선수단의 항의가 오갔다. 경기는 과열됐고, 몇몇 선수들이 이성을 잃으며 경기 흐름이 요동쳤다. 22라운드 상주상무전에 맹활약한 울산 미드필더 고창현은 포항의 거친 수비와 주심의 몇몇 판정에 평정심을 상실했거, 포항의 윤희준 코치는 벤치에서 퇴장 당했다. 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기에 걸맞지 않은 판정이 많았다.
소문난 잔치는 또 한번 드라마를 남겼다. 포항은 FA컵과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연이어 탈락하며 찾아온 위기를 호랑이굴에서 극복했다. 최근 상승세를 타던 울산은 또 다시 포항의 악몽에 발목을 잡히며 기세가 꺾였다. 역사는 동해안 더비의 감정을 극단으로 끌고 가고 있다.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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