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9. 19.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신임 감독 선임과 관한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감독의 계약기간이 지켜지기란 어렵지만”이라는 말을 꺼냈다. 실제로 전 세계 어느 리그와 대표팀에서나 감독이 보장된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K리그챌린지(2부리그) 소속클럽 강원FC가 지난 18일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을 갑작스레 경질했다. 선수단과의 소통 부족과 지도 방식에 대한 마찰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앞서 K리그 클래식(1부) 무대에서도 강등권으로 추락한 성남FC와 경남FC가 감독 교체라는 강수를 두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 2013시즌에도 강등을 피하려는 팀들이 특단의 대책으로 꺼낸 수는 부진한 성적을 낸 기존 감독의 경질이었다. 대구, 경남, 강원이 차례로 시즌 중에 감독을 바꿨다. 경남은 살아남았으나 대전과 강원은 강등을 피하지 못했고, 경남은 올 시즌 12개 팀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K리그 순위표에 반영된 감독의 평균 수명
그렇다면 당장의 성적을 기준으로 감독을 교체하는 것은 효과적인 일일까?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의 12개 팀의 감독 운영 현황과 순위표를 들여다 보면 조금은 진실에 가까워 질 수 있다. (표의 평균 기록에는 감독 대행이 감독직을 이어갔을 경우, 혹은 1년 미만의 기간을 코치가 대행을 맡은 경우는 포함하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 외 일반적 과정으로 감독을 선임하지 않았던 상무도 제외했다.)
현재 상위 5위권 이내의 팀들 중 4개팀은 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이 가장 긴 팀들이다. 4위 제주유나이티드를 제외한 4개 팀은 최소 3년 이상 감독을 믿어왔다. 제주는 평균 재임 기간 2.6년, 시즌 중 경질 횟수 6회로 감독 경질을 쉽게 진행해온 역사가 있으나 현재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박경훈 감독이 올 시즌 참가 감독 중 연속 재임 기간이 5년으로 가장 길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전북현대의 경우에도 최강희 감독이 2013년 중반에 돌아와 연속 재임 기간으로 본다면 2년이지만, 본의 아니게 국가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자리를 비운 기간을 빼면 전북에서만 9년 연속 프로 감독직을 맡고 있다. 전북은 이 기간 코치 대행 체재로 시즌을 치르며 최 감독을 기다렸다.
감독에게 필요한 3년의 시간
외국인 선수 없이 성공적인 시즌을 치르고 있는 포항 역시 황선홍 감독이 4년 차 시즌이며, 위기론이 들끓었던 수원도 서정원 감독이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성적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수석코치로 재임한 기간을 포함하면 3년째다. 감독 부임 첫 시즌에는 AFC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 및 진출권 확보 실패로 비판을 받았다.
4년 차를 맞은 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2013시즌과 2014시즌 전반기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믿고 기다린 끝에 후반기에는 거대한 도약을 이루며 2년 연속 AFC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라는 성과까지 냈다. 만약 전반기에 최 감독을 경질했다면 후반기의 추격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올 시즌 경질 위기에 놓여있던 인천유나이티드의 김봉길 감독 역시 부임 3년 차의 경험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로 핵심 전력을 잃은 전남드래곤즈 역시 하석주 감독이 부임 3년 차를 맞으면서 전반기에 돌풍의 핵으로 불렸다.
국가 대표급 선수를 다수 보유한 지난 시즌 준우승팀 울산현대를 제외하곤 감독 재임 기간이 짧은 팀들은 순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축구계에서 통상적으로 감독이 자신의 구상대로 팀을 구축하기에 3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팀들의 모습은 이 통설을 뒷받침한다. 올 시즌 하위 4개팀 중 3개 은 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참을성이 부족한 팀이며, 감독에게 믿음을 주지 않은 팀들이다.
10위 성남은 올해 성남FC 시민구단으로 재창단한 이후 성적이 급락했다. 올 시즌에만 박종환, 이상윤감독 대행을 경질했고, 이영진 감독 대행의 경우 일주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네 번째 서령탑이 자리했다. 일화시절 성남은 시즌 도중 감독을 경질한 기록이 한 차례 뿐이며, 박종환(7년), 차경복(7년), 김학범(3년), 신태용(4년) 등 장기 재임 감독이 있을 때 좋은 성적을 냈다.
승강제가 불러온 경질 릴레이, 과연 효과적일까?
다시 강원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강원은 지난 시즌 후반기에 성적 부진을 겪던 김학범 감독을 경질하고 김용갑 감독을 선임했다. 김용갑 감독은 비록 상주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경험 부족을 보이며 완패해 강등을 막지 못했으나 스플릿 라운드 마지막 10경기에서 6승 2무 2패를 기록하며 강등 직행권을 피했다. 그러나 강등이 결정된 이후 김용갑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대전의 상황은 좋은 반면교사다. 대전 역시 지난 시즌 후반기에 김인완 감독을 경질했다. 감독 대행직을 맡은 조진호 감독은 비록 강등을 피하지 못했으나 마지막 6경기에서 5승 1무의 호성적을 거뒀다. 대전은 2014시즌을 챌린지에서 시작하며 조진호 감독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며 연속성을 가져갔다. 대전은 현재 챌린지 선두로 2위와 승점 차를 무려 16점이나 벌려 놓았다.
강원 역시 현재 3위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툴 감독의 선임과 그 이후의 진통 속에 승점과 시간을 허비했다. 박효진 코치 대행 체재로 나설 남은 경기를 잘 치를 가능성도 있지만, 승격 플레이오프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과정에서 경험 부족이라는 문제가 지난 시즌 말미와 마찬가지로 불거져 나올 수 있다.
강원 측은 알툴 감독이 강원 선수들의 원터치 플레이를 발전 시킨 점에서 소득이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효과를 거두며 장기간 팀을 이끌 수 있는 감독을 더 신중히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지난 시즌 말미에 가능성을 보인 김용갑 감독 체제를 보완하는 것은 어땠을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툴 감독이 제주유나이티드 재임 기간 같은 문제로 선수단과 마찰을 빚었다는 점에서 올 시즌 강원이 승격에 실패한다면 감독 선임의 실패를 결정적 이유 중 하나로 진단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감독 선임 과정에서 더 신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경질을 결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하고, 선임을 결정하는 과정은 더 신중해야 한다. 명문 팀은 감독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팀이 감독의 변화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경험한다.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지만, 결국 오랜 믿음과 투자 만이 성공의 기반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통계적으로 모두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팀들이 감독의 선임과 경질을 너무 쉽게 결정하고 있다. 국가 대표팀에서 이미 그와 같은 일이 수 없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지도자를 잃었다.
K리그가 더 좋은 축구를 선보이고,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선수들의 기량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좋은 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는 가부터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한준 기자
풋볼리스트
[축구환상곡] 수원의 축축하고 저릿한 최종전 승리 (0) | 2022.11.11 |
---|---|
[축구환상곡] 자본은 중국, 기반은 일본, 인물은 한국 (0) | 2022.11.10 |
[축구환상곡] 호랑이굴은 왜 포항에 점령당했나 (0) | 2022.11.09 |
[축구환상곡] '진정한 주연' 이동국이 미스터 올스타인 이유 (0) | 2022.11.09 |
[축구환상곡] '축구특별시' 대전, 강등은 굴욕이 아니라 역사다 (0) | 2022.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