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 08.
둘은 레전드(Legend), 곧 전설이었다. 2000년대~2010년대 오랜 세월 유럽 축구 마당을 풍미하며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중원의 지휘자’였다. 한 명은 리버풀에 둥지를 틀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했다. 다른 한 명은 바르셀로나에 보금자리를 치고 스페인 라리가를 누볐다.
20년 안팎에 걸쳐 몸담고 휘저었던 그곳에서, 둘은 전설을 키웠다. 선수로서 농익을 대로 농익은 꽃은 이제 감독으로서도 열매를 맺으려 한다. 자신의 꿈을 부풀렸던 본향으로 되돌아와 차근차근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시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무(팀)가 고비에 처한 상황에서, 서둘러 맡겨진 역은 버팀목이었다. 침체의 늪에 빠진 프리미어리그 애스턴 빌라와 라리가 바르셀로나는 둘을 사령탑으로 영입하며 반전을 꾀했다. 2021-2022시즌 도중에 단행한 감독 교체로서,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다.
‘리버풀 수호신’ 스티븐 제라드는 애스턴 빌라에서, ‘바르셀로나 지휘자’ 사비 에르난데스는 바르셀로나에서 각각 그리던 고향의 품에 안겼다. 2015년 은퇴한 제라드 감독은 6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사령탑으로, 2019년 옷을 벗은 사비 감독은 2년 만에 라리가 사령탑으로 각각 자신이 뛰놀던 마당에 돌아왔다.
제라드와 사비의 ‘닮은꼴’ 행보, 비슷한 성격의 감독 역으로까지 이어져
둘은 ‘닮은꼴’ 축구 행로를 걸어왔다. 1980년생 동갑내기로서 선수 활동과 은퇴 시기, 맡았던 배역, 원 클럽 맨, 유럽 최상위 리그 사령탑 데뷔 시즌 등에서 아주 엇비슷한 행적을 밟고 있는 제라드와 사비다.
리버풀 유스팀 출신(1987~1998년)인 제라드는 1998년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바르셀로나 유스팀(1991~1997년) 출신인 사비는 역시 같은 해 성인 마당에 뛰어들었다. 물론 첫걸음을 내디딘 성인 팀은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였다.
둘은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선수 생활 막바지까지 한곳에서 땀을 쏟아붓는 ‘충성심’을 보였다. 사실상 원 클럽 맨이었다. 제라드는 미국 LA 갤럭시에서 은퇴하기 1년 전인 2015년까지 리버풀에서 열정을 불살랐다. 사비는 2019년 카타르 알사드에서 옷을 벗기 4년 전인 2015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정열을 불태웠다.
포지션도 똑같이 중앙 미드필더로서 플레이메이커였다. 구태여 차이점을 찾는다면 신체 조건에 따른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탄탄한 체격의 제라드가 위치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미드필더’였다면, 왜소했던 사비는 패싱과 볼 키핑력이 일품이었던 ‘패스 마스터’였다.
닮은꼴 족적은 핵심 유러피언 리그 사령탑 등장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시즌 도중 ‘소방수’로서 긴급 투입된 점에서도 똑같은 항로다. 스코틀랜드 레인저스를 이끌던(2018~2021) 제라드와 알사드를 지휘하던 사비는 이번 시즌이 펼쳐지던 중 난파 위기에 빠진 애스턴 빌라와 바르셀로나를 구할 선장으로서 영입됐다.
독약이 든 성배 운명 헤쳐 나가리라 기대
제라드 감독과 사비 감독은 2020-2021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둘 모두 무패로 리그 정상에 올라서며 포효했다. 제라드 감독이 이끈 레인저스는 32승 6무로 스코틀랜드 리그 2(3부리그) 우승을, 사비 감독이 지휘한 알사드는 19승 3무로 카타르 스타스리그 패권을 각기 안았다.
이처럼 내로라했던 두 스타 출신 감독은 화려하기만 했던 선수 시절 못지않게 사령탑으로서도 빼어난 자질을 뽐냈다. 그만큼 두 감독이 본격적 시험 무대인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에서 어떤 역량을 나타낼지가 이번 시즌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흥밋거리로 떠올랐다.
제라드 감독은 12라운드부터 애스턴 빌라를 이끌고 있다. 현재(이하 현지시간 1월 8일) 작황은 승패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19라운드까지 4승 4패였다. 이 가운데 3패가 맨체스터 시티(1-2), 첼시(1-3), 리버풀(0-1) 등 1~3위 팀과 맞붙은 결과여서 어느 정도 위안을 삼을 만하다. 사령탑에 앉을 당시 16위였던 팀 순위는 13위로 다소 반등했다. 15라운드에서 10위까지 치솟은 점에서 엿볼 수 있듯, 제라드 체제 아래서 반전을 연출할 힘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사비 감독은 14라운드부터 팀을 지휘하고 있다. 작황은 희망적으로 풍년의 기미를 띠고 있다. 6경기에서 나타난 성적은 3승 2무 1패였다. 1패(0-1)는 레알 베티스에 당했다. 선장을 맡을 당시 9위까지 추락했던 팀 순위는 5위까지 상승했다. 레알 마드리드(34회 우승)와 함께 라리가 2대 명문 클럽인 바르셀로나(26회 우승)는 사비 체제 아래서 이른 시간 안에 실추됐던 자존심을 되찾으리라 기대된다.
현대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다. 하물며 프로 스포츠는 두말할 나위 없는 전쟁터다. “그라운드는 전장의 압축판이다.”라는 말이 달리 회자될 리 없다. 그만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마당이 스포츠 세계다.
따라서 시즌 중 사령탑 교체가 곧잘 충격요법으로 쓰인다. 승패에 연연한 구단의 칼바람 앞에서, 감독이 곧잘 희생양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령탑은 바람 앞의 등불”로 비유되는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에서, 제라드 감독과 사비 감독이 독약이 든 성배의 운명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하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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