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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史說] 박찬호와 장재영의 길

--손장환 체육

by econo0706 2022. 9. 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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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03 

 

1994년 1월. 한양대 재학생인 박찬호가 LA 다저스와 메이저리그 입단 계약을 했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계약금이 무려 120만 달러(약 14억 원)로 당시 미국에서도 A급 대우였다.

야구 기자들마저 깜짝 놀랐다. "진짜야?" 하는 의문이 먼저였다. 메이저리그는 꿈의 무대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대학생 박찬호'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저스가 왜 박찬호를?

그도 그럴 것이 박찬호는 당시 한국 최고의 투수가 아니었다. 최고는커녕 동기들 중에서도 3∼4위 정도로 평가받는, 그저 그런 투수였다. 동기들 중에 임선동과 조성민이 1,2위를 다퉜고, 정민철과 손경수도 있었다. 박찬호는 '볼은 빠르지만 제구가 나쁜' 미완의 투수였다. 공주고 출신인 박찬호는 연고 팀인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에 입단하고 싶었으나 실패하고, 한양대로 갔다.

그런데 이런 선수를 다저스가 스카우트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박찬호는 그 해 4월7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17번째 선수였다. 이러한 다저스의 환대에 나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나의 예상(?)대로 박찬호는 두 게임에서 4이닝 6실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2년간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했다. 나는 이 '해프닝'이 LA의 많은 한국 교민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저스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단정해버렸다.

 

▲ 사진((왼쪽부터)전 야구선수 박찬호,키움 히어로즈 장재영 선수)=박찬호 홈페이지,키움 히어로즈 / 이코노텔링그래픽팀.

그런데 당시 다저스의 직원으로서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시절을 함께 했던 이태일(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NC 다이노스 대표를 지냈다)씨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저스는 박찬호의 '파이어볼러' 능력을 인정한 것이었다. '제구는 다듬을 수 있지만 빠른 볼을 던지는 능력은 키울 수 없다'는 게 그들이 박찬호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박찬호는 최고 98마일(157km), 평균 95마일(152km)의 속구를 뿌리며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4승을 거뒀다.

키움 히어로즈의 장재영(19)을 보면서 박찬호를 떠올렸다. 제구는 안 되지만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계약금 9억 원의 고졸 신인 투수.

4월 29일. 장재영은 두산과의 홈경기에 처음 선발 투수로 출전했다. 152km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쉽게 뿌렸지만 역시 제구가 문제였다. 1회에만 5개의 볼넷을 남발하며 강판됐다.

일반인들은 시속 150km의 공이 어떤지 실감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힘껏 던져도 100km를 넘기기 힘들다. 확실히 150km 이상을 던진다는 것은 천부의 자질이다. 거기에 제구까지 되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

자, 이제 장재영은 두 갈래 길 앞에 서있다. 하나는 박찬호의 길이고, 하나는 한기주(전 기아)의 길이다. 키움의 지도자들이 25년 전 다저스 지도자들의 철학과 지도력을 갖고 있다면 장재영은 한국 파이어볼러의 계보를 잇는 훌륭한 선수로 자랄 것이다. 그러나 '볼만 빠른 선수'에서 그친다면 역대 최고인 10억 원의 계약금만 받고 사라져간 한기주의 뒤를 따를 것이다.

 

손장환 편집위원  inheri2012@gmail.com


자료출처 : 이코노텔링(econotelling)(http://www.econotel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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