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5
희망찬 출발이었지만, 최악의 결말로 치닫고 있다. 수원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레전드’ 서정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3시즌, 수원삼성블루윙즈는 지난 38라운드 울산현대호랑이전 패배로 리그 5연패를 기록했다. 역대 최악의 기록에 한 경기 차로 다가섰다.
수원은 2010년 3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6연패를 당했던 이후 3년 만에 반갑지 않은 신기록을 다시 쓸 위기에 놓였다. 27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전북현대모터스와의 39라운드, 12월 1일 원정 경기로 치러야 하는 인천유나이티드와의 40라운드 경기도 승리를 보장하기 어렵다. 수원은 울산전 패배로 2014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 실패가 확정되면서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었다.
▲ 화려했던 시절
수원이 리그 우승에 실패한 지 5년 째다. 지난 세 시즌 동안 무관에 그쳤다. 2013년, 야구도 배구도 삼성을 모 기업으로 둔 팀이 우승했지만 축구는 이러한 영광을 잃은 지 오래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이야기는 축구에 있어선 통하지 않는다.
수원삼성은 1996년 첫 시즌에 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을 차지했고, 1997시즌에는 AFC 컵위너스컵에서 준우승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98시즌, 창단 3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올랐고, 1999시즌에는 두 개의 리그컵과 슈퍼컵, 정규리그 우승으로 프로 대회 전관왕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2001년과 2002년 아시아 클럽챔피언십 연속 우승과 아시아 슈퍼컵 연속 우승으로 아시아 시장을 넘어 세계 무대에 수원이 아시아 클럽 축구의 맹주임을 알렸다. 당시 개최 예정이었던 클럽 월드컵이 FIFA 내부의 문제로 개최되지 못한 것에 통탄했다. 수원삼성은 창단 후 10년 만에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직전까지 도달했었다. 브라질 내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한국으로 향했고, 유럽 대표 경력을 지닌 선수들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수원삼성은 K리그 최초의 슈퍼클럽이었다. K리그 전체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시적인 목표를 가지고 수원삼성과 K리그의 브랜드를 세계에 알렸다. 전 세계 주요 리그에 모두 리그를 선도하는 클럽이 있다. 수원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앞장섰다. 수원삼성이라는 이름이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를 갖기 시작했다.
▲ 우울한 현실
2013년 현재 수원삼성의 현 주소는 ‘슈퍼클럽’과 거리가 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클럽 자생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선수단 연봉 공개, 객단가 공개로 개혁을 시작했다. 안일하고 방만하게 운영되어 왔던 축구 클럽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칼바람이다. 재정적 페어플레이 제도(FFP)를 진행 중인 유럽축구연맹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프로축구 발전을 위한 용기 있는 시도다.
하지만, 수원삼성 측은 이 같은 조치에 K리그 클럽 간의 목표와 규모, 방향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특히, 장단점이 극명이 엇갈리는 연봉 공개 실시가 K리그 이적 시장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봉대비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클럽이 받는 부담과 압박감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수원은 2013시즌 공개된 국내 선수 연봉 1위를 기록했다. 5년 째 리그 우승에 실패하고 있는 성적과 맞물린 연봉 1위 기록은 모 기업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결국 수십억에 달하는 대규모 예산 감축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여름 수원이 스테보, 라돈치치, 보스나 등 특급 외국인 선수를 모두 내보내야 했던 이유다.
수원삼성의 모 기업 삼성전자는 프로축구 경기를 통한 수익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 프로 축구단을 운영해서 얻는 수익은 삼성의 입장에선 미미한 수준이다. 삼성이 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수원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 돈을 버는 팀이 늘어나야 한다는 대전제에 공감하지만, 이를 위해선 돈을 쓰는 팀도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2012년 매출액은 무려 201조원이다. 순수익만 23조원이다. 세계적인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 첼시에 연간 200억원의 스폰서 비용을 지원하고, 레알마드리드의 홈 경기장 산티아고베르나베우를 비롯한 유수의 경기장 스폰서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헛돈을 쓴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한 유럽 시장 홍보효과가 지대하다.
수원삼성의 선수단은 여전히 강력하다. 선발명단에 위치한 내국인 선수들의 면면은 탄탄하다. 하지만 다른 상위 클럽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벤치 명단까지 확장하면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 결정적인 차이는 외국인 선수에서 갈린다. 수원삼성이 보유한 외국인 선수는 산토스가 유일하다. 뛰어난 선수지만 슈퍼스타는 아니다. 문제는 2014시즌에 이 같은 스쿼드가 더 화려해지길 기대하기는커녕 더 축소될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 슈퍼클럽의 종말, 내수 위축으로 이어진다
세계적인 리그를 살펴봐도 투자액수가 성적으로 직결된다. 연봉총액이 성적과 비례한다. 돈으로 우승컵을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축구계를 떠나 그 어떤 분야에서도 투자 없이 이룰 수 없다. 우리 시대의 논리다. 지역 연고 강화, 관중 동원을 통한 마케팅 수익 증대, 유소년 육성을 통한 선수단 강화는 성공적인 축구단의 모범 답안이다. 필요 조건이다. 하지만 스타 선수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그러한 가치에 반하는 악은 아니다. 충분 조건에 해당하는 더 나아간 방법이다.
축구계에 돈을 돌게 하는 것은 슈퍼클럽이다. 중계권 수익과 우승 상금 규모가 작은 K리그에선 더더욱 그렇다. 예산 규모가 작은 팀들이 키워낸 선수들을 빅클럽이 거액에 영입하면서 자금이 회전된다. 최근 K리그에는 이적료가 발생하는 선수의 이동이 거의 없다. 선수간 트레이드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마저도 활발하지 않다. 상위 클럽의 예산 동결 및 감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쉽게 해외 리그를 바라보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타 종목과 축구의 차이는, 국내 리그가 아니더라도 좋은 대우를 받으며 뛸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수원이 대대적인 예산 감축을 벌이면서 향후 다른 상위 클럽들 역시 연봉 총액 낮추기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연봉 1위팀은 성적 1위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며 시즌을 치러야 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 구단의 경우 자금 지원을 끌어내는 것이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
문선명 총재 서거 이후 축구에 대한 열정의 기반이 사라진 일화그룹이 축구단 운영에서 손을 뗐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서거 이후 포항스틸러스 역시 긴축재정이 이어져 외국인 선수 없이 2013시즌을 치렀다. 이 같은 흐름이라면 다른 기업 역시 축구단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축구판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K리그 클럽의 규모가 하향평준화 될 위기다. 기업 구단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 K리그 경영정상화, 자생력 강화와 더불어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FC 바르셀로나가 자체 육성 선수로 성공을 거뒀지만, 연간 유소년 축구 분야에 투자하는 액수만 한화로 200억원이 넘는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성장은 지난 10여년 간 1조원에 달한 독일축구협회 주도의 막대한 유소년 선수 육성 투자자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단은 주인은 팬이지만,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위해선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축구클럽의 수익 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스폰서 수익이다. K리그의 경우 가장 큰 돈을 쓸 수 있는 스폰서들이 직접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정 자립이 절실한 시도민구단과 기업 구단의 생리는 다르다.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 J리그가 연봉 정상화 작업을 통해 축구 선수들의 연봉 거품을 뺐지만, 여전히 외국인 선수의 수준은 높다. 출범 초기 대대적인 투자로 리그 가치를 높였다. 인프라를 구축했고, 경기 수준을 높였다. J리그는 K리그보다 늦게 출범했지만 벌써 안정된 구조를 갖췄다. 중국 슈퍼리그는 최근 과감한 투자를 통해 아시아 축구를 선도하는 위치를 선점했다. 오일 머니로 무장한 서아시아 클럽들은 오래 전부터 영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광저우의 성공으로 중국 내 다른 클럽들의 투자 의지까지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금 K리그는 우수 외국인 선수 영입 경쟁은 뛰어들기 조차 어려운 실정이며, 뛰어난 국내 선수들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는 결국 리그 수준 저하로 이어지고, 국내 선수들이 기량 발전 및 사기 진작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액 연봉의 감독과 코칭 스태프, 스타 선수들의 유입은 굳이 유럽에 나가지 않아도 한국 프로축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K리그엔 많은 돈이 드는 외국인 코칭 스태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외국인 스타 선수들의 씨가 말랐다.
K리그는 지난 5년 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클럽을 배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2014시즌에 이 행진이 멈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리그 내 슈퍼클럽이 존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리그에서 지키고, 아시아 클럽 대항전에서의 선전으로 리그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투자 없는 K리그 클럽의 연이은 선전은 AFC에서 환영 받지 못했다. 광저우의 우승이 아시아 클럽 축구의 경향을 바꿔놓으리란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 수원삼성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원삼성은 올 시즌 홈 18경기에서 수원은 총 331,237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경기당 18,402명으로 클래식 14개 구단 중 1위다. 하지만, 빅버드를 찾는 관중수는 감소 추세다. 지난 주말 울산전은 2013시즌 주말 마지막 홈 경기였음에도 9,775명이 찾아 1만명을 넘기지 못했다.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거품이 빠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축구 클럽이 매치데이 수익을 늘리고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다. 창단 당시 수원삼성의 목표는 세계적인 클럽이 되는 것이었다. K리그 정상, 아시아 정상을 밟았고, 흥행 기록에서도 안정된 위치를 가져갔다. 그 다음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점에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재정적으로 튼튼하지 못한 K리그에서 슈퍼클럽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일등기업 삼성이다. 수원삼성은 팬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팬층을 확대하기 위해 더 화려하고 우수한 팀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FIFA클럽 월드컵 참가는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목표다.
하지만, 지금 수원은 목표점과 점점 멀어진 채 표류하고 있다. 2014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대회에 나서지 못하게 된 환경은 수원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014시즌이 그 길을 단축시킬 수 있는 여정이 될지도 확신할 수 없다. 수원삼성은 더 이상 별들이 모인 은하수 군단이 아니다. ‘갤럭시’로 대표되는 클럽 정체성이 흔들린 수원삼성은 길을 잃었다.
한준 기자
풋볼리스트
[축구환상곡] '진정한 주연' 이동국이 미스터 올스타인 이유 (0) | 2022.11.09 |
---|---|
[축구환상곡] '축구특별시' 대전, 강등은 굴욕이 아니라 역사다 (0) | 2022.11.09 |
[축구환상곡] 클래식-챌린지 맞붙는 리그컵 부활을 제안한다 (0) | 2022.11.08 |
[축구환상곡] 서울의 ACL 우승, K리그 전체가 응원해야 하는 이유 (0) | 2022.10.14 |
[축구환상곡] 국가대표보다 위대했던 K리거 스테보 (0) | 2022.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