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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다산과 반계(磻溪)선생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7. 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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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은 고향에 두고 온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학문에 매진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면서, 꼭 읽어야 할 책을 일일이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 빼놓지 않던 책 중의 하나가 『반계수록(磻溪隨錄)』이라는 책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의 초창기 거두이자 실학의 1조(一祖)라는 반계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저서로 나라를 경영할 요체가 담긴 책인데, 실학관계 저작으로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반계의 철학과 사상을 가장 높이 숭앙했던 분은 성호 이익이라는 실학자였으며 성호를 누구보다 숭앙하고 존경했던 분이 다산이었으니, 조선후기 실학의 3대가는 바로 반계·성호·다산이라 규정했던 위당 정인보의 주장은 수긍해도 별다른 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성호를 통해 반계로 연결되는 다산의 학통(學統)은 ‘경세치용(經世致用)’으로 성격 지어져 국가를 경륜할 방책을 강구해낸 실학자로 일컫게 된 것입니다.
 
“정성스럽고 간절하던 경세(經世)의 뜻 / 홀로 반계선생께서 보겠네.”(拳拳經世志獨見磻溪翁 : 古詩二十四首) 다산의 이 시에서 반계가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살려낼 뜻으로 얼마나 깊은 연구를 했었나를 알 수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이 그의 최고 명작 「허생전」에서 당대의 경세가로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와 반계거사(磻溪居士) 유형원을 들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반계의 인물과 학문이 어떤 수준인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연암은 그런 경세가들이 세상을 경륜하는 일에 동참하지 못했음을 참으로 애석하게 생각했습니다. 다산 역시, 임금을 보좌해 나라를 경륜할 만한 인재가 산림에 묻혀있다 늙어죽었고 그분의 훌륭한 유저(遺著)조차 국가에서 활용하지 않아 백성을 살려내고 나라를 건지는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망국의 조짐이 역력하던 그런 때에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반계나 성호는 물론 다산까지도 발탁되지 못하고 책만 저술하다 세상을 떠났으니 나라가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요즘 같은 난세,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주위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네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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