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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성리가(性理家) 비판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7. 1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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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고려 말에 중국에서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새로운 사조(思潮)가 일어났습니다. 고려왕조는 누가 뭐라 해도 불교국가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불교가 중심사상이던 때에, 주자학의 보급은 사상적 대전환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자학은 ‘성즉리(性卽理)’의 대원칙을 수용한 학문이어서 바로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용어와 일치합니다. 유학사상의 주요 명제인 성(性)의 개념을 이(理)라는 관념의 세계로 해석하면서 실천이나 행동과는 관계없이 높은 수준의 사상체계를 구축하면서 지식인들에게 높은 관심과 매력을 끌었던 학문이 바로 성리학이었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역성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정권의 합리화와 타당화를 기하는 목적으로라도 불교를 누르고 유교를 숭상하는 새로운 변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 즉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하여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성리학의 주되는 이론에 동의하여 그런 내용의 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다산은 ‘성리가(性理家 :『孟子要義』)라고 호칭하면서 그들의 이론에 절대로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유교의 경전(經傳)을 실용(實用)의 입장에서 다시 해석하는 방대한 작업을 완성한 분이 다산이고, 그런 학문 영역을 주자학과 대립되는 ’다산학‘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리가는 언제나 성(性)을 이(理)라 여긴다”(性理家 每以性爲理 :『孟子要義』)라고 시작하여 “사람이나 사물이 태어나면서 함께 하늘과 땅의 이치를 얻어서 성(性)이 되는데 이게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다”(人物之生 同得天地之理爲性 此所謂本然之性)라는 주자의 주장에 다산은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교를 반대한다는 성리학의 ‘본연지성’은 바로 “무시자재 윤회전화지설(無始自在 輪回轉化之說)”인 불교논리로 귀착하여 실천과는 거리가 먼 관념의 세계에 머무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성리학의 세계에 함몰되어 주자(朱子)를 후공자(後孔子)로 여겨 도도한 사조를 이루고 있을 때, 그렇지 않다고 경(經)을 실천논리로 풀어낸 그의 ‘다산학’은 그래서 위대하고 훌륭한 학문이라고 자랑하는 것 아닐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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