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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포커페이스·스마트 야구로…좌완 쌍벽 양·김 우뚝 서다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2. 9. 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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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9. 07 

 

2017, 2018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포효는 2년 연속 마무리투수가 아닌 선발 투수가 했다. 무슨 말인가. 먼저 2018시즌 한국시리즈 6차전. SK는 연장 13회초 한동민의 홈런으로 리드를 잡고, 13회말 마운드에 4차전 선발투수였던 김광현(31)을 올렸다. 4승2패로 시리즈를 마무리한 SK 우승 포효는 마지막 타자 박건우(두산)를 삼진으로 잡아낸 김광현의 몫이었다.

 

▲ 양현종(左), 김광현(右)

 

1년 전엔 어땠나. 우승팀은 달랐고, 상대와 결과는 같았다. 3승 1패로 앞선 KIA는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7-6으로 앞선 9회말, 역시 선발투수이자 에이스 양현종(31)을 마운드에 올렸다. 양현종은 1사 만루의 위기를 내주며 흔들렸지만 이내 안정을 찾고 박세혁, 김재호를 범타로 잡아내 팀의 리드를 지켰다.

 

양현종은 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팀의 1년 농사를 결정짓는 장면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를 올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는 그렇게 2년 연속 선발투수가 한국시리즈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양현종(KIA)과 김광현(SK). 두 선수는 1988년 동갑내기로 가장 믿을 수 있는 국가대표 투수이기도 하다.   바다 건너 메이저리그에 또 한 명의 한국 왼손투수가 있다. 한화 이글스 출신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의 상징이라는 사이영상에 도전하고 있는 류현진(32LA· 다저스)이다. 2013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류현진은 양현종, 김광현보다 한 살 위다.

 

양현종과 김광현에게 올 시즌 류현진의 투구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같은 왼손투수로서, 같은 세대에 활약을 하는 입장인 만큼 두 사람 모두 아주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배에 대해 우리가 이렇다저렇다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특히 전반기 1점대 방어율을 비롯해 완벽에 가까운 내용을 선보였던 류현진이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더욱 말을 아끼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둘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닮고 싶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류현진의 어떤 부분이 자신들의 투구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 물었다.

 

양현종의 4월은 류현진과 완전 딴판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양현종의 4월 성적은 6경기 등판에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점은 8.01이었다. 평균자책점은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33명 가운데 33위, 꼴찌였다. 그랬던 양현종은 5월부터 달라졌다. 양현종은 이후 14승 3패 방어율 1.14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은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서 자존심을 되찾았다.

 

그가 류현진을 닮아가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 “저 같은 경우는 위기 상황에서 템포가 빨라지고 조급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류현진 선수를 보면 잘 던지던, 못 던지던 투구 템포에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표정에도 변화 없이 포커 페이스를 유지합니다. ”

 

양현종, 자신 있는 직구 많이 던져

 

▲ 양현종 2018/2019 구종 변화

 

“그리고 이런 일정한 템포와 표정은 어느 구종을 던지던 똑같습니다. 직구도 체인지업도 같은 템포에서, 같은 폼으로 던집니다. 그렇다 보니 타자는 똑같은 템포와 똑같은 폼, 똑같은 표정을 상대로 노림수를 갖기가 정말 힘들 겁니다. 이런 점은 정말 배우고 싶습니다.”(양현종)

 

양현종은 올 시즌 류현진의 인터뷰에서 뭔가 ‘이거다’ 싶은 메시지를 읽었다. ‘경기의 준비’였다. 그는 류현진이 볼넷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어느 경기에서 ‘계산된 볼넷’을 주었다는 인터뷰를 읽고 ‘경기의 준비’가 완벽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경기의 준비’란 무엇인가. 몸 상태를 최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상대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그 정보를 내 지식으로 만들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 놓는 것이다.

 

양현종은 지난 6월 29일 kt전에서 5이닝을 던진 뒤 왼쪽 내전근 미세통증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꾸준히 7이닝 이상을 던지던 양현종으로서는 낯선 장면이었다. 한편으로는 시즌 초반 2승을 거둔 류현진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서 사타구니 통증으로 스스로 마운드를 내려왔던 장면과 닮았다. 그날 당장은 아쉬울 수 있으나 ‘서두르지 않고 더 나은 몸 상태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류현진을 통해서 느낀 것이다.

 

마운드에서 승부 형태를 보면 양현종은 살아나기 시작한 5월부터 직구의 비중을 좀 더 높이고 체인지업의 비중을 줄였다. 슬라이더와 커브는 거의 같다. 직구의 비중을 높였다는 것은 자신 있는 구종을 더 많이 던져 이른 카운트에 승부를 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이닝을 던지겠다는 포석이다. 양현종은 빠른 공의 볼 끝이 가장 뛰어난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결국 지난 8월 28일 164.2이닝으로 린드블럼(두산)을 제치고 시즌 투구 이닝 1위로 올라섰다.

 

김광현은 2014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를 노크한 적이 있다. 그때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받은 평가는 냉정했다. 최고 입찰액이 200만 달러(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였다. 선발투수로서는 “안정되지 못한 컨트롤 탓에 필요 없는 투구수가 많고,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실제로 그랬다. 김광현은 타자가 손대기 쉽지 않은 공을 던지려고 했다. 그 말은 삼진을 잡아내는 비율은 높지만, 볼넷도 많고 원하는 지점에 공을 던지는 능력(커맨드)도 좋지 못하다는 말이었다. 김광현에게 메이저리그의 이런 지적은 ‘쓴 약’이 됐다. 그리고 류현진은 그에게 ‘거울’이 됐다. 류현진의 투구를 보며 김광현은 뭔가를 얻으려고 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그 키워드는 ‘스마트’라는 단어였다. 김광현은 말한다. “류현진 선수는 스마트하다. 우선 다른 선수들의 장점을 습득해 자신의 장점으로 만드는 데 탁월하다. 그리고 올 시즌의 활약을 보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즌 전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오른쪽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체인지업이 그의 주무기였다.”

 

“올해 활약은 오른쪽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커터를 많이 쓰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타자에게서 멀어지는 체인지업과 파고 들어오는 커터가 조화를 이루자 타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김광현, 삼진보다 아웃 잡는 데 주력

 

▲ 김광현 2018/2019 구종 변화

 

김광현은 류현진의 스마트한 야구를 닮고 싶어했다. 그는 류현진과 스타일이 다르다. 파워풀한 팔 스윙에서 저돌적인 공격, 거침 없는 마운드에서의 액션 등이 일정한 템포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류현진과는 다르다.

 

그러나 배울 것은 충분히 있다. 김광현은 올해 자신의 패턴에 변화를 주었다. “나는 체인지업 투수가 아니라 슬라이더를 던진다. 그러나 류현진 선수가 컷패스트볼(커터)을 잘 쓰는 것을 보고 나도 올해 커터와 투심의 비중을 높였다.”(김광현)

 

그런 공부와 변화, 스마트한 노력으로 김광현은 ‘다이내믹하면서 무모하지 않은 투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필요없는 삼진’보다 ‘필요한 아웃’을 잘 잡아내는 투수가 되었다. 류현진이라는 거울을 보고 자신을 진단하고,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다.

 

류현진을 통한 양현종, 김광현의 발전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가 ‘멘탈’이라고 부르는 어떤 관점은 ‘정신력’으로 표현되는 ‘근성’보다는 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한 ‘경기에 대한 지식’, ‘게임에 대한 이해’에 더 가깝다는 것 아닐까.

 

이태일 /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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