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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 체조 (4·끝) 양학선 올림픽 금 숙원 풀어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2. 9. 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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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2. 26.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든든한 디딤돌이 된 대규모 행사였다. 종합 4위(금 12 은 10 동 11)의 꿈만 같은 성적을 거둔 가운데 기계체조가 동메달 11개 가운데 하나를 보탰다.

그해 9월 24일 서울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체조경기장은 만원 관중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국의 기계체조 첫 올림픽 메달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일과 20일 진행된 예선에서 꼴찌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른 박종훈은 파이널 무대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다.

1차 시기에서 9.95점, 2차 시기에서 10점 만점을 받았다. 예선과 결선을 더해 평균한 최종 점수는 19.775점. 불가리아 동독 소련(2명) 일본 선수들을 단숨에 제치고 동메달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기계체조는 1960년 도쿄 대회에 김상국(남자)과 유명자(여자)가 처음 출전한 이후 28년 만에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뤘다.

 

▲ 서울올림픽 도마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박종훈의 착지모습 / MBC 뉴스


서울 올림픽 2년 뒤에 열린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는 8년 만에 북한이 참가하면서 기계체조 종목의 아시아 판도를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는 대회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이주형이 남자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로 비교적 선전했다. 독무대를 펼친 중국(금 11 은 8 동 3)을 빼고 한국과 북한(금 2 은 2 동 4), 일본(금 1 은 3 동 3)이 호각지세를 보였다.

박종훈 이후 한국 기계체조는 뜀틀에서 강세를 보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뜀틀 종목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는 유옥렬이었다. 1991년(인디애나폴리스)과 1992년(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연속 우승한 유옥렬은 1991년 대회 뜀틀에서 자신에게 뒤져 2위를 차지한 비탈리 셰르보와 1991년 대회 3관왕인 그리고리 미수틴(이상 독립국가연합)에게 밀려 동메달을 기록했다.

4년 뒤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여홍철이 뜀틀 금메달에 도전했다. 여홍철은 ‘여1’과 ‘여2’ 등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이 국제체조연맹에 등재되는 등 최고의 기술을 보였지만 결선 착지 과정에서 실수하면서 러시아의 알렉세이 네모프에게 0.031점 차로 뒤지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 1991년 셰필드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도마 결승전의 여홍철.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기계체조에 뜀틀만 있는 건 아니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평행봉에서 17살의 어린 나이로 중국의 구오린야오와 공동 금메달을 받았던 이주형은 1999년(톈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으나 이듬해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리샤오펑(중국)에게 밀려 은메달을 차지했다. 리샤오펑은 톈진 대회에서 6위였다.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유원철이 다시 한번 평행봉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또다시 은메달에 그쳤다. 8년 전 이주형의 금메달 꿈을 가로막았던 리샤오펑이 유원철의 금메달 희망도 깨뜨렸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양태영의 개인 종합 동메달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2018년 현재까지 한국 스포츠의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양태영은 개인종합 5개 종목을 잘 치러 금메달을 눈앞에 뒀으나 6번째 마지막 종목인 철봉에서 9.475의 이해할 수 없는 낮은 점수를 받아 합계 57.774로 그때까지 뒤져 있던 미국의 폴 햄(9.823)에게 역전당했다. 2위 김대은은 합계 57.811로 가장 먼저 6개 종목을 마친 상태였다.

한국 선수단 관계자들은 대회조직위원회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제스포츠재판소(CAS)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는데 CAS는 장황한 설명을 붙인 뒤 양태영의 소청을 받아들일 만한 근거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려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 양학선은 한국 체조의 첫 올림픽 금메달 외에 2011년(도쿄), 2013년(앤트워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 등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 ⓒ GettyImages


그때로부터 8년여 뒤인 2012년 8월 6일(현지 시각) 양학선은 런던 올림픽 기계체조 뜀틀 결선에서 1차 시기와 2차 시기 합산 평균 16.533점을 받아 러시아의 데니스 아블랴진(16.399점)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합산 점수가 나오기 전에 결선에 오른 다른 선수들의 축하를 받을 정도로 완벽한 1위였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후 반세기가 넘은 52년 만에 딴 한국 기계체조의 첫 금메달이었다. 그동안 한국 기계체조는 올림픽에서 은메달 4개와 동메달 4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양학선은 올림픽 외에 2011년(도쿄), 2013년(앤트워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대회 금메달 등 세계 최고의 뜀틀 선수로 한국 기계체조의 수준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체조의 세부 종목인 리듬체조에서 눈여겨볼 만한 성적이 나왔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세부 종목이 된 리듬체조에서 손연재가 한국 선수로는 가장 좋은 5위를 기록한 것이다. 러시아와 동유럽 나라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이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로서 눈에 띌 만한 성과를 거뒀다. 손연재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 단계 위인 4위에 올랐다. 동메달리스트인 잔나 리잣디노바에게 0.685점 뒤져 한국인 첫 올림픽 리드체조 메달리스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매트를 떠났다.

한국 체조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서울 올림픽부터 이어져 온메달 행진을 마감했지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를 발판 삼아 재도약을 노린다.

 

신명철 기자

 

자료출처 :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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