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1. 12
지난여름 뉴욕 맨해튼에서 ‘모든 것의 미래’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이 행사는 세상의 12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발표와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그중 하나인 스포츠의 미래를 전망한 전문가로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와 제프 루나우 휴스턴 애스트로스 단장, 2028 LA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 케이시 워서만 등 화려한 인사들이 나왔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는 낯설지만 상징적인 인물도 있었다. e스포츠팀 ‘팀 디그니타스’의 여성 게이머 에밀리 가리도였다.
▲ ‘스포츠의 미래’심포지엄 관전기
그들이 현장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예측한 스포츠 미래의 가장 큰 화두는 “우리가 살고, 일하고, 즐기는 세상에서 기술과 빅데이터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였다.
메이저리그 빅데이터 활용의 상징적 인물 제프 루나우 휴스턴 애스트로스 단장은 그가 팀을 2017년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끌기까지 어떻게 데이터를 활용했고, 그 시도가 일으킨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2011년 12월 애스트로스에 합류할 당시 데이터와 통계를 기반으로 21페이지 분량의 팀 리빌딩 계획을 만들어 짐 크레인 구단주에게 전달했다. 애스트로스는 그 로드맵에 따라 팀을 리빌딩했고 다섯 시즌 뒤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워서맨 미디어 그룹의 리더이자 2028년 LA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 케이시 워서맨은 “다가올 LA올림픽을 한마디로 전망한다면 기술기반(tech-driven)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발전할 기술과 스포츠의 접목이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팬들이 스포츠를 접하고 즐기는 ‘팬 경험(Fan experience)’에서 지금까지와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팬 경험’은 팬이 스포츠를 즐기는 경험이다. 경기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리그와 구단, 선수 등 공급자들은 팬들이 더 편리하고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 전체의 품질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MLB 휴스턴의 제프 루나우 단장(오른쪽)이 데이터 기반 구단 운영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 이태일
팬 경험의 중요성이 커지고 스포츠에 대한 관점이 소비자 중심으로 옮겨갈 때 한 가지 주목할 지점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주력세대가 누구인가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신년호 ‘2019년의 세상(The World in 2019)’에서 올해가 연령대별 인구의 주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해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 조사이기는 하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사회를 주도하는 주류세대의 개념이 바뀐다는 것이다(그래프 참조).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를 주도했으며 1993년부터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독점했던 베이비부머세대(1946~64년생)가 2019년을 기점으로 밀레니얼세대(1981~96년생)에게 그 최다인구세대 자리를 넘겨준다고 분석했다.
1981년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세대는 누구인가. ‘참을성이 없다’고 표현되는 그들은 한마디로 ‘디지털 네이티브’다. 시대적으로 모니터 세대에 태어나 그 안의 세상에 익숙하다. ‘참을성이 없다’는 말은 묵은 것에 금방 싫증을 내지만 변화의 수용에 적극적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렇게 그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콘텐트에 익숙하고 디지털, 모바일 세대답게 그걸 공유하는 걸 즐긴다. 모니터라는 자기만의 세상 덕분에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배우는 데도 자율적이다. 그래서 수용과 적용이 빠르다. 누가 알려주는 것도 빨리 습득하지만 스스로 배우고 만들어 내고 전달한다. 그런 필요에 따라 그들은 늘 수용과 공유에 익숙한 디바이스와 함께한다. 그 ‘생활의 공간’이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스포츠통계 전문회사 STATS의 조사에 따르면 다른 세대가 71%의 스포츠 콘텐트를 TV로 소비하는 데 비해 밀레니얼세대는 44%만을 TV를 통해 소비하며 뉴스조차 60%를 SNS를 통해 얻는다. 그리고 80%는 스포츠 경기 직관 도중에 SNS를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 성향을 지닌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된다는 것은 소비시장의 성향은 물론 콘텐트 생산, 유통의 방식이 그들의 입맛에 맛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많은 스포츠 기관과 미디어, 구단이 밀레니얼세대를 타겟 유저로 삼아 다양한 팬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 미국 세대별 인구변화
2016년에 호주 멜버른의 에티아드(Etihad) 스타디움은 최초로 경기를 보면서도 경기장 밖의 세상과 연결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스마트 시트’로 불리는 그 자리는 좌석에 설치된 기기를 통해 다른 콘텐트(다른 스포츠, 라이브 방송, 어린이 채널, 스코어보드 피드 등)를 그 자리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과거의 경기장이 관객을 경기에 몰입시키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관중들에게 경기 이외의 조건을 즐길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여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 더 팬 친화적인 마케팅이 된 것이다.
▲ 추신수 / 연합뉴스
디지털 네이티브 신세대가 주류가 되며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정보를 얻고 소비하는 ‘플랫폼’이 작고 다양하게 나누어지는 ‘플랫폼 프레그멘테이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전통미디어 안에 갇혀 있던 콘텐트들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급격하게 빠져나간다. 그게 합법이건 불법이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그들이 바라는 것들을 실행하기 위해 끝없이 발견하고 공유한다.
그렇게 새로운 플랫폼이 끝없이 태어난다. E스포츠 라이브 스트리밍 네트워크 트위치(twitch)만 봐도, CNN, MSNBC등 시사 정보 채널보다 월간 이용자 수가 많다. 디지털 스포츠의 본질이 가상현실임에도, e스포츠는 옥외공간에서의 영향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LOL(리그오브레전드) 매치의 준결승, 결승은 LA스테이플스센터와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한국 인천 문학경기장 등에서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 NBA는 2017년 프로스포츠 리그로서는 처음으로 e스포츠 리그를 출범시켰다. 아담 실버 커미셔너가 “NBA2K는 우리의 네 번째(NBA, D-리그, WNBA와 함께) 리그다”라고 공언할 정도다.
스포츠 전문 미디어 ESPN은 밀레니얼세대의 컨텐트 e스포츠를 주요 서비스군에 포함시키고, 그들이 소비하는 방식인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ESPN플러스를 새롭게 구성해 그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밀레니얼세대의 득세는 콘텐트 지형을 바꾼다. 스포츠의 전통적인 개념은 세대의 변화와 함께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가 시대의 변화에 맞는 스포츠산업을 추진하려면 먼저 그 주축세대가 어디에 있는가를 봐야 할 것이다. 그곳은 밀레니얼세대가 있는 곳, 디지털 세상이다.
이태일 /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SUNDAY
[인사이드 피치] 모바일 앱·스튜디오K 대박…MLB 돈줄은 '문어발 콘텐트' (0) | 2022.09.23 |
---|---|
[인사이드피치] 팀USA·사무라이재팬 '국뽕' 꿰어 보배 만든 미·일, 한국은… (0) | 2022.09.22 |
[인사이드 피치] '봄 야구'로 팬·돈 잡는 MLB…해외에 돈 쏟는 한국 (0) | 2022.09.20 |
[인사이드 피치] 평범함으로 영웅이 된 그들…리베라·유코·클롭 (0) | 2022.09.20 |
[인사이드 피치] 봄 미식 축구, 겨울 야구…비시즌 달군 또 하나의 리그 (0) | 202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