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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史說] 유상철 '멀티 플레이' 모습 벌써 그립다

--손장환 체육

by econo0706 2022. 9. 2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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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09 

 

암 투병을 하던 유상철 감독이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죽을 때 평가가 진짜 평가라는데 그런 점에서 유상철 감독은 잘 살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만 50세. 아깝다.

유상철 감독과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은 없다. 그가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했을 때는 잠깐 축구를 떠나 다른 종목을 맡고 있어서 그의 초기 활약상을 보지 못했다.

경신고와 건국대 출신인 유상철은 그 해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1순위는 계약금을 받으므로 그의 부모가 관례대로 인사(?)를 하고 갔는데 다음날 차범근 감독이 유상철을 불러 돌려줬단다. 경신고 대선배인 감독이 그러니까 본인이나 부모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하고 무척 걱정을 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그를 볼 기회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였다. 하지만 그 때도 차범근 감독이나 코칭스태프, 축구협회 임원들을 주로 만났지, 선수들을 직접 만나진 않았다.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 선수들을 기자들이 만나서 좋을 일이 없다.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하고, 차 감독이 경질되는 어수선한 상황. 유상철은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어 유일한 승점을 올려준 선수다. 자신의 첫 월드컵 골이었는데도 마냥 좋아할 수 없던 분위기였다.

유상철은 선이 굵은 플레이를 하는 만능 선수였다. 주로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때에 따라 수비도 하고, 공격에도 적극 가담했다.

솔직히 '멀티 플레이어'는 감독이 좋아하는 선수다. 여러 용도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팀에서는 꼭 필요한 선수지만 선수 개인으로는 오히려 손해다. 같은 포지션에서 꾸준히 활동해도 최고의 선수가 되기 힘든데 수시로 역할이 바뀌면 집중하기 힘들다. 소위 '땜빵 선수'가 되기 쉽다.

 

▲ 사진(故 유상철 전 추구선수,축구감독)=KFA,인천유나이티드 FC / 이코노텔링그래픽팀

 

그런데 유상철은 그 어려운 역할을 소속 팀과 대표 팀에서 모두 훌륭히 해냈다.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유상철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베스트 11'에 올랐다. 프로축구연맹은 매년 리그가 끝나면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를 가린다. 유상철은 94년 신인임에도 수비부문 베스트 11에 뽑혔고, 98년에는 미드필더부문, 2002년에는 공격부문 베스트 11이었다. 지금까지 유상철만 갖고 있는 기록이다. 내가 더욱 유심히 본 부분은 98년이다. 유상철은 그 해 15골을 넣어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미드필더 베스트 11이 최고의 공격수들을 모두 제치고 득점왕까지 차지한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보여준 중거리 슛처럼 그의 골 능력은 탁월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막판 히딩크 감독이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 5명을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유상철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상철은 수비수와 미드필더 두 몫을 훌륭히 해냈다.

일본 J리그에서도 그랬다.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뛰던 2000년, 유상철은 미드필더로 뛰면서 4게임 연속 골 등 9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로 나서기도 했다.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득점왕은 무산됐지만 그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해였다.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모르겠다. 아직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스러졌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 너무 일찍 죽었다.

 

손장환 편집위원 inheri2012@gmail.com

자료출처 : 이코노텔링(econotelling)(http://www.econotel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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