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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 (27) '경기개최 금지' 논란 부른 마산구장 롯데 팬들의 '추한 난동'

---[韓國프로野球 亂鬪史]

by econo0706 2022. 9. 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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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09

 

1990년은 한국 프로야구가 열린 구장에서 관중 난동이 기승을 부렸던 해였다. 그해 일어났던 굵직한 난동만 간추려보자.

5월 29일, 대구구장에서 이만수가 관중석에서 날아온 빈 깡통을 되던져 관중난동을 촉발, 경찰이 최루탄까지 터뜨려 강제 해산시켰다. 

6월 5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삼성과 OB 선수들의 집단 패싸움은 누적된 갈등과 앙금이 대폭발한 사건이었고, 난투극의 정점이었다. 6월 6일치 <일간스포츠>1면 머리기사에서 적시했듯이 ‘OB, 삼성 유혈 난투극’ 이었고, ‘최악추태, 주심구타, 빈볼시비’로 얼룩져 ‘공포의 그라운드’가 따로 없었다.

6월 7일, 마산구장 난동은 규모면에선 8월 26일 잠실구장 소요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추한 난동’으로는 단연 으뜸이었다.

7월 12일, 롯데 팬들이 잠실구장에서 롯데의 대패에 흥분, 노상 ‘청문회’를 여는 등 집단 소동을 일으켰다.

7월 18일, 사직구장에서는 롯데가 삼성에 지자 관중들이 구장 유리창과 기물을 파손하는 등 극렬한 소동을 피웠다. 그 난동으로 관객 7명이 구속됐다.

8월 25일, 인천구장에서 열렸던 롯데-태평양의 경기 후 관중들이 롯데 구단 버스에 돌을 던지는 등 난동을 일으켰다.

8월 26일, 잠실구장 난동은 ‘대구구장 방화사건’(1986년 10월 19일)과 더불어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격렬했던 관중 난동으로 손꼽을 만하다.

 

이번에 다룰 마산구장 난동은 관중 추태의 극치를 이룬 사건이라는 점에서 경종을 삼아 마땅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사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당시 난동의 현장을 취재했던 한 사진기자가 그 때를 떠올리면서 “징글징글하다”고 했을까.

1991년 <한국프로야구 연감>에는 ‘LG와 롯데 경기도중 술 취한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몰려들어 술판을 벌이고 야구 흉내를 내는 추태를 보임’이라고 짤막하게 기술해 놓았지만 실상은 제3자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추태 대행진’이었다.

올해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산구장 관중의 태도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있다.

6월 7일,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7차전이자 그해 마산구장 첫 경기가 열렸다. 최대 관중수용능력이 1만 5000명(그날 유료관중 수는 1만4500명이었음)밖에 안 되는 마산구장 앞에는 경기 전부터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쳤고, 일대 혼잡을 빚었다.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급기야 경기 시작 전 왼쪽 외야 출입구로 밀고 들어가 5000여명의 팬이 공짜로 입장 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수용 인원을 초과한 마산구장은 가뜩이나 관중석 경사가 가팔라서 안전사고가 염려될 지경이었다. 

LG가 롯데 선발 김종석을 두들겨 1회에 먼저 2점을 뽑아내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4회 초 LG 공격 도중 일부 관중이 오른쪽 펜스를 넘어 그라운드 진입을 시도, 빈병이 날아들었고 경기가 5분간 중단됐다. 5회 초에도 외야 가운데 쪽 관중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청원경찰 5명이 황급히 제지하는 소동을 빚었다.

롯데가 6회 말 한영준의 적시타로 1-2로 추격했으나 경기는 그대로 흘러갔고, 9회 말 롯데의 마지막 공격 때 외야 관중 3명이 그라운드에 뛰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병과 캔, 쓰레기통을 마구 집어 던졌다. 무기화한 오물이 우박처럼 쏟아지자 청원경찰들이 헬멧까지 쓰고 수습에 나섰지만 힘에 부쳤다. 술에 취한 일부 팬들은 아예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청원경찰들이 이를 제지하자 20여명의 관중이 그라운드에 난입, 청원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밤 9시 50분께, 60여명의 관중이 그라운드를 점거, 도저히 경기를 속행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관중석 곳곳에서는 술에 취한 관중들이 버젓이 노상 방요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오물이 잔뜩 들어 있는 쓰레기통을 애꿎은 기자석에 집어 던지는 바람에 역한 냄새가 나는 오물을 뒤집어 쓴 기자도 생겼다.

이 소동 속에 경찰은 물론 심판과 선수들도 덕 아웃에 갇혀버렸다. 30여분이 지나 가까스로 소동이 진정됐으나 롯데 패배(1-2)로 경기가 끝난 후  1만 여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난입, 서로 병을 던지며 패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관중석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는 등 1시간 이상 무법천지를 연출했다.

롯데 선수단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1시간 10분 남짓 운동장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빠져나갔다.

롯데 구단 측은 “이런 상태에서는 8일 마산경기 속행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대책을 논의한 후 결정을 내리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산구장의 프로야구 경기 잠정 금지 검토가 심도 있게 논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롯데 구단은 이튿날인 8일 상오 숙의 끝에 ‘마산구장 경기 재개’를 결정했다. 연고구단인 롯데가 KBO에 “7일 사태는 일부 관중이 소란을 벌였지만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마산에서 계속 경기를 갖는데 지장이 없다고 판단된다. 앞으로 이 같은 소란이 없도록 대책을 세우겠다.”고 보고한 데 따른 것이다.

KBO 이웅희 총재는 당초 마산경기를 일정 기간 동안 하지 않을 것을 검토했지만 결국 “심판, 기록원 등의 보고도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어서 마산경기는 계속 갖는다.”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8일 마산경기는 비가 내리는 바람에 취소가 됐지만 실제 현장 상황은 훨씬 험악했고

‘공포 분위기’였다는 게 현지의 롯데 선수단 의견이었다.

‘마산 경기 계속’ 결정도 현장의 롯데 구단 프런트나 롯데 감독 등이 보고를 한 것이 아니라 서울 롯데 구단 관계자가 “별 일 없을 것”이라는 보고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영 롯데 감독은 8일 “롯데로선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치려고 했으나 워낙 장내가 공포 분위기여서 선수들의 마음도 조급해지고 벤치 신경도 날카로워져 경기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없었다.”면서 “3차례 병살타 포함 모두 5번의 병살 플레이가 나온 것도 그런 분위기가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화살을 관중 난동으로 돌렸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조종규 심판(현 KBO 심판위원장)은 “1만5천명 수용규모인 마산구장에 2만 여명이나 들어온 게 이번 불상사의 가장 큰 요인이다. 관중들이 인파에 떠밀려 그라운드에 무단으로 들어온 뒤 나가지 않아 경기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상당수의 관중들이 술에 만취돼 있어 사고의 위험성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마산구장은 관중석 경사가 가파르고 각종 시설 면에서 경기를 치르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다.”며 “담당 구단이 관중 통제와 안전대책에 보다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더 큰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백인천 LG 감독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부산, 마산 지역 야구팬들의 열기는 좋지만 뭔가 착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7일 경기 도중에 일어난 관중 난동은 도대체 말이 안 된다. 그런 일은 오히려 홈팀에 불리할 수도 있다. 경기가 진행되지 못할 상황이라면 몰수게임을 선언할 수도 있겠지만 심판이 더 큰 관중 소란을 우려, 막상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관중 소란은 역시 술을 많이 마신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7일의 경우에도 일부 관중들이 백스크린 쪽으로 몰려들어 뒤늦게 경비원들이 이를 제지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시전에 경비를 증원,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경기장 시설도 외야 망을 높이 설치하는 등 재점검을 해야 한다.”

마산, 그곳의 옛 야구장은 글자그대로 ‘살풍경’했다. 세월은 흘러갔고, 옛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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