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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4전5기 이대진 뒤에도 아버지가 …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2. 9.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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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7. 26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에 대한 정(情)이 화제다. 작고한 아버지 얼 우즈를 향한 타이거 우즈의 애정은 브리티시 오픈 우승 직후 뜨거운 눈물로 전 세계에 표현됐다. 우즈는 "아버지는 이 들판에 나오셔서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셨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특히 오늘 나는 매우 침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늘 "나는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를 비롯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말해 왔다.

 

이 뜨거운 여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용기있는 젊음이 있다. KIA 타이거스 이대진(32)이다. 그리고 그 젊음의 뒤에 애틋한 아버지의 애정이 있다. 1993년 프로에 데뷔한 이대진은 90년대 중반 해태의 전성기 때, 광주구장 마운드의 가장 무서운 타이거였다. 그는 95년과 98년 프로야구 탈삼진 왕이었고 97년에는 선동열.이강철 등 기라성 같은 선배를 제치고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주인공이었다. 그가 98년 5월 14일 현대를 상대로 기록한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은 당시 그의 구위가 어느 정도로 위력적이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이대진의 성공 뒤에는 아버지 이재열씨의 열정이 있었다. 배재고-성균관대, 실업야구 대한통운에서 2루수로 뛰었던 그는 큰아들 이대진의 야구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했고, 누구보다 열성적인 후원자가 됐다. 진흥고 시절 투수-타자 양쪽에 모두 재능을 보인 아들이 대학을 거치지 않고 프로에 직접 입단하는 데 조언자가 됐고, '투수 이대진'을 원하는 해태와 계약할 당시 '3년 안에 최고투수가 되지 않으면 타자로 전향한다'는 세부조건을 내걸 정도로 치밀했다.

 

그때 이대진은 3년 만에 최고투수가 됐다. 96년 해태와 현대의 한국시리즈에서 김응용 당시 해태감독은 1차전 선발로 에이스 조계현이 아니라 이대진을 내보냈다. 이대진이 팀 내 최고의 구위를 지녔다는 의미였다. 그 탄탄대로의 시절에, 이대진은 늘 "아버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자신에게 야구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야구로 인생을 열어갈 수 있게 해준 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고 고마워했다.

 

이대진은 99년부터 부상에 시달렸다. 전지훈련지에서 어깨통증으로 훈련을 중단한 그는 그해부터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네 번이나 부상으로 넘어졌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도전했다. 모두 실패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04년 수술 이후 지난해 지루한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최근 2군에서 실전 피칭을 시작했다. 다섯 번째 도전이다. 자신이 호령했던 광주구장 마운드에 다시 설 날도 멀지 않았다. 그는 "포기는 없다. 은퇴를 생각해본 적도 없다. 지금은 그저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불굴의 의지. 그는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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