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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史說] 정선민 대표팀 감독의 도전

--손장환 체육

by econo0706 2022. 9. 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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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07

 

10월 3일, 요르단 암만에서 끝난 여자농구 아시아컵에서 한국은 4위에 그쳤다. 대회 5연속 우승을 차지한 일본, 준우승팀 중국, 3위 팀 호주에 잇달아 졌으니 정확히 4위다.

확실한 센터 박지수(198cm)가 빠진 상태였기에 처음부터 좋은 성적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박지수는 미국 WNBA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서 뛰느라 이번 대회에 나오지 못했다.

성적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정선민 감독이었다. 대표팀 신임 감독인 정 감독은 감독 데뷔전인 이번 대회에서 박지수 없이도 일본과 접전을 벌이며 62-67로 아깝게 졌다. 일본은 귀화한 흑인 선수 2명을 포함한 정예 멤버로 호주와 중국을 꺾고 5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호다. 센터 출신인 정 감독으로서는 박지수의 부재가 더욱 안타까웠을 것이다.

정 감독을 보면서 1994년의 추억이 떠올랐다. 94년에는 5월에 일본 센다이에서 아시아컵이, 6월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세계선수권이, 그리고 10월에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아시안게임이 줄줄이 열렸다. 당시 나는 처음 농구 기자를 맡았고, 만 20세인 정선민은 처음 대표팀에 뽑힌 막내였다. 대회 때마다 한일전이 열렸고, 그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농구 기자로서 첫 해외 출장이었던 센다이에서 정선민을 처음 보았다. 정선민도 그때가 대표선수로서 처음 출전한 대회였다. 센다이. 바로 2011년 동일본을 휩쓸었던 쓰나미의 발원지다. 정선민은 막내이면서도 주전 센터인 정은순을 도와 빅 포워드 역할을 충실히 잘 해냈다. 당시 구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중앙아시아 팀들이 처음 출전했다. 덩치 큰 선수들과 상대해야 했던 정은순이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얘들이 무슨 아시아예요?"하던 말도 기억난다. 그러나 경쟁 상대는 이들이 아니라 홈코트의 일본과 중국이었다. 일본을 87-74로 이기자 감독은 물론 선수들 모두 우승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벌어진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은 일본에 87-100으로 졌다. 이때는 내가 현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만큼 한일전은 어떤 종목이든지 실력 이외의 변수가 작용한다.

그리고 문제의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국은 최강 중국과의 경기에서 유영주, 전주원, 손경원, 천은숙 등의 3점 슛이 미친 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103-73, 무려 30점 차로 이겼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문제는 일본전. 일본에 이기면 결승전에서 중국과 다시 붙고, 일본에 지면 결승 상대가 일본이었다. 한국이 선택권을 쥔 상황. 30점 차로 이기긴 했지만 역시 중국은 버거운 상대였다. 한국의 정주현 감독은 일본을 선택했다. 전략적으로 그럴 수는 있다.

 

▲ 10월 3일, 요르단 암만에서 끝난 여자농구 아시아컵에서 한국은 4위에 그쳤다. 사진(여자농구 대표팀 정선민 감독(왼쪽),여자농구 대표팀(오른쪽 아래))=WKBL,KBA / 이코노텔링그래픽팀.

그러나 정 감독은 너무나 티가 나게 '져주기'를 했다. 경기 초반 손경원이 3점 슛을 성공시키자 바로 빼버렸다. 그리고 센터인 막내 정선민에게 3점 슛을 쏘라고 했다. 말로 정확히 지시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평소 3점 슛을 던질 일이 없던 정선민이 먼 거리에서 무표정으로 공을 던지고, 결과도 보지 않고 뒤돌아 가던 모습에서 그렇게 판단할 뿐이다.

당시 정선민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무리 감독 지시라지만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아시안게임에서, 더구나 한일전에서, 그것도 일본 관중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 너무나 노골적인 져주기에 일본 관중도 야유를 보내고, 경기 후 공식 인터뷰 자리에 정 감독이 나오지 않자 흥분한 중국 기자들이 정 감독을 찾아 헤매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스포츠맨십을 망각한 그의 처사에 나도 흥분해서 가장 독한 비판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결승전. 경기는 한국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반전 내내 일본이 10점 정도 앞서갔다. 당황한 정 감독의 표정이 기자석에서도 또렷이 보였다. 내심 '쌤통'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었다. 9점 차로 진 채 전반이 끝나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박상하 단장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라고 소리쳤다. 이미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는데 금메달도 따지 못한다면 감독뿐 아니라 단장도 책임을 면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기자의 촉이 있었는지 "마지막에 천은숙이 인터셉트해서 9점 차로 줄인 게 좋은 징조 같아요"라고 박 단장을 위로(?)했다. 정말 후반전에 기적이 일어났다. 한 점 한 점 점수 차를 줄이더니 결국 77-76, 한 점 차 역전승을 거뒀다. 진짜 여럿 살렸다.

정선민 감독을 보고 '막내 정선민'을 생각하다가 생각의 실타래가 여기까지 이어졌다. 어쨌든 요르단 아시아컵 4위로 내년 월드컵 출전권은 따냈다. 정선민 감독이 내년에는 박지수까지 데리고 멋진 설욕전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손장환 편집위원 inheri2012@gmail.com

자료출처 : 이코노텔링(econotelling)(http://www.econotel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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