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6. 14
11일 지바 롯데전에서 홈런을 취소당한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억울할 것이다. 공을 담장 너머로 넘겼는데, 앞선 주자가 3루를 밟았는데도 밟지 않았다고 판정해(느린 화면으로 다시 본 결과 3루를 밟았음이 확인됐다) 홈런을 도둑맞았으니 말이다. 요미우리 구단은 13일 리그 사무국에 심판원의 기술향상과 비디오판정 도입을 건의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하라 요미우리 감독은 언론을 통해 재경기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엽이 홈런을 되찾거나 재경기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도둑맞은 홈런을 약 한 달 만에 되찾은 경우가 있다. 1983년 7월 24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조지 브레트는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3-4로 뒤지던 9회 초 2사 후 극적인 역전 2점 홈런을 때렸다. 당시 두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다투던 시기였고, 승부가 9회 2사 후 뒤집어졌기 때문에 브레트의 홈런은 무척이나 극적이었다. 그러나 브레트가 더그아웃에서 동료의 축하를 받고 있을 때, 양키스 빌리 마틴 감독이 뭔가를 항의하고 나섰고, 곧 이어 매크릴랜드 주심은 브레트의 홈런을 무효로 하고, 아웃을 선언했다. 브레트가 사용한 방망이에 파인타르(pine tar.송진)가 규정(손잡이 끝에서 17인치까지) 이상으로 과도하게 묻어 있다는 이유였다.
브레트는 곧바로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오히려 퇴장당했다. 경기는 4-3, 양키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로열스는 이튿날 리그사무국에 정식으로 항의했고, 이 홈런 논쟁은 여론의 관심을 끌며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됐다. 결국 한 달 가까운 논쟁 끝에 당시 아메리칸리그 회장 리 맥페일은 주심의 판정을 뒤집고, 브레트의 홈런이 유효하다고 판정했다. 8월 18일이었다. 브레트는 홈런을 되찾았고, 로열스가 5-4로 앞선 9회 초 2사 후부터 재경기를 벌여 로열스가 이겼다. 맥페일은 방망이 손잡이 끝 17인치 넘게 송진이 묻어 있었지만, 그게 홈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한 홈런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홈런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규정이 잘못됐다는 식이었다.
이승엽의 홈런과 브레트의 홈런. 둘 다 상대팀의 어필에 의해 홈런이 취소됐다. 브레트는 메이저리그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홈런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맥페일 회장이 '악법도 법이다'라고 규정을 고집했다면 브레트는 홈런을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규정 준수를 고집한 게 아니라 홈런의 순수성이 훼손됐는지를 먼저 생각했고, 그렇지 않다면 규정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승엽의 홈런은 되찾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아깝지 않은 교훈을 줬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절대로 나 혼자 잘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점. 내가 완벽한 타격으로 담장을 넘겨도 동료가 실수를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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