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2.
중국 한(漢)나라 말엽, 극심한 혼란기에 이루어진 위, 오, 촉 세 나라의 각축과 패권 다툼을 그려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가 나온다.
촉의 승상 제갈량이 북벌(위나라 공략)을 꾀하기 위해 첫 원정길에 나서 군사 요충지인 기산을 지키는 임무를 마속(馬謖)에게 맡겼다. 헌데, 실전 경험이 별로 없었던 마속이 병법도 무시하고 식수확보가 어려운 산위에 진을 쳤다가 위나라 사마의에게 대패, 그만 대세를 그르치고 말았다.
이에 제갈량은 그 책임을 물어 마속을 처벌했다. 마속이 죽은 뒤 제갈량은 선제(先帝)인 유비가 “마속은 속이 빈 사람이니 중용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말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실책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다.
촉은 세 나라 가운데 국세가 가장 약한 나라였다. 인구가 위나라의 4분의 1, 오나라의 반에도 못 미쳤다. 다만 제갈량이라는 당대 최고의 군사전략가에 의해 버텼던 것이다.
201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지켜보면서 ‘읍참마속’의 옛일이 떠올라 장황하게 설명했다.
적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는 위나라와 촉나라로 대비할 수 있겠다.
예전과는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삼성 구단은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 그룹을 배경으로 풍부한 지원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강자이다. 반면 넥센 구단은 해마다 후원기업을 물색해 구단 살림을 어렵사리 꾸려가고 있다. 그룹의 후방 지원이 든든한 삼성 구단과 자급자족의 길을 찾아야하는 넥센은 구태여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여러모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스포츠 세계에서는 종종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게 묘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올해 한국시리즈 정상에 첫 도전한 넥센의 선전을 기대했던 것이다. 약자를 응원하는 것은 우리네 인정이 아닌가.
류중일 삼성 감독과 염경엽 넥센 감독은 개인적인 역량,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 지도자이다. 하지만 배경의 차이로 인해 염경엽 감독의 지도력을 좀 더 주목했던 것도 사실이다. 언론은 지혜로운 그를 제갈량에 빗대 ‘염갈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인 생각이지만 스포츠 지도자들을 야신, 야통, 야왕 따위로 미화, 과대 포장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마뜩치 않다)
염경엽 감독의 한국시리즈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갈래로 짚어볼 수 있겠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투수력과 타력, 수비력 3박자가 모두 삼성에 뒤졌다. 좀 더 들여다보면 크게 박병호와 강정호 두 강타자의 타격이 뜻밖에 부진했고, ‘최고의 유격수’로 칭찬을 한 몸에 받았던 강정호의 허술한 수비가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염경엽 감독이 11일 잠실 6차전에서 져 삼성의 통합 4연패가 달성되자 눈물을 훔친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착잡한 감회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시선이 메이저리그로 향해있는 넥센 유격수 강정호가 한국시리즈 승부처였던 3차전(7일, 목동구장)과 5차전(10일, 잠실구장)에서 보여준 수비 실수는 염경엽 감독이 분한 눈물을 흘리게 만든 화근이었다. 잘 지은 한 해 농사를 마지막 순간에 망쳐버린 것이다. 다르게 보면, 용케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던 넥센 선수들의 집중력과 힘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뻗지 못했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를 제패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도 알게 해준다.
시리즈의 분수령이었던 5차전 9회에 넥센 포수 박동원이 삼성 채태인을 상대로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고 있던 손승락에게 계속해서 몸 쪽 공을 유도해 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것 또한 못내 아쉬운 장면이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일수도 있겠지만, 그 볼 배합 실수 하나가 한국시리즈 향방을 갈랐다고 볼 수도 있겠다. 패배의 책임을 특정 선수에게 지우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복기(復棋)는 필요하다.
염경엽 감독과 넥센 선수들은 잘 싸웠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규리그 2위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던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길이 기억될 것이다. 그 열정이라면,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정상의 문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원래 ‘열정(passion)’이라는 말에는 갈망, 수난, 고통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야 온전한 열정으로 승화된다.
염경엽 감독의 말처럼 “준우승은 비참한 것”이다. 비참할지라도 그 경험은 값진 것이다. 그걸 극복해 내야 하는 것이 냉엄한 승부세계이다.
홍윤표 선임기자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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