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프로야구 8개구단 단장들은 “프로야구의 위기”를 외치며 “FA계약을 규정대로 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FA 3무(無)’를 결정했다. 계약금 없고, 다년계약 없고, 50% 이상 인상 없고. 자기들이 어겨놓고 자기들이 지키자는, 좀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합의는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지금껏 그래왔듯 필요하면 또 어길 거라는 한가한 예상. 그래서 단장들은 아예 족쇄를 채워버렸다.
올해 야구규약에는 선수들도 잘 모르는 제170조가 슬그머니 생겨났다. 170조는 ‘FA계약위반 처분’에 대한 내용이다.
‘FA규약을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무효이며, 위반구단은 총재에 의해 5000만원의 제재금이 과해진다. 또한 위반구단은 해당선수와는 향후 선수계약을 할 수 없으며, 이 계약교섭에 참여한 구단 임직원과 해당 선수에게는 각각 만 2년간 직무정지, 임의탈퇴선수 신분의 제재가 주어진다.’
앞서 말한 3무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선수는 2년간 임의탈퇴로 묶여 경기에 뛸 수 없다. 계약금도 없고, 다년 계약도 없다. 올 겨울 FA 중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고 있는 히어로즈 정성훈의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올해 연봉 3억원에서 50% 인상된 4억5000만원뿐이다. 다년계약이 금지되기 때문에 다음해에 연봉이 깎일 수도 있다. 계약금도 없는 마당에 선수에 대한 권리는 또 구단이 갖는다. 4년을 뛰어야 다시 FA 자격을 얻는다. 이름은 자유계약선수지만 선수에게 자유는 없다. 선수들이 일본행을 택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쯤되면 해외 스카우트들에게 안방을 내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단들이 나서서 아예 선수들을 쫓아내자는 얘기다. 두산 김동주가 일찌감치 일본 진출을 선언한 가운데 롯데 손민한, 두산 이혜천이 관심 대상이다. SK 이진영도 갈 수만 있다면 간다는 분위기다. 내년에 FA가 되는 김태균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불보듯 뻔한 한국 선수들의 일본행 러시. ‘의리’로 붙잡는 시대는 지났다.
여자 핸드볼 삼척시청의 이계청 감독은 지난해 5월 우선희를 루마니아팀으로 보내며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야구가 핸드볼이 되는 날, 오지 않으리란 법 없다. 그러면 그때 야구선수들은 올림픽에서 죽어라 뛰어야 할 거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