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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아득한 모음(母音)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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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우리 다래헌(多來軒)의 아침은 연두빛입니다.
 
신록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푸른 햇살이 창문을 열게 하고, 이슬에 젖은 풀꽃 향기가 숨길을 가로막습니다. 숲에서는 꾀꼬리와 까치가 울고 비둘기가 구구구구 짝을 부릅니다. 그리고 먼곳에서 "뻐꾸욱 뻐꾸욱…" 아득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해마다 이 무렵에 듣는 뻐꾸기 울음소리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숙연해집니다. 그곳은 엄마의 음성 같은, 영원한 모음(母音) 같은 그런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고 늘 새롭기만 합니다.
 
그 아득한 소리가 들려오면 가끔 일을 하다가도 멈춥니다. 그리고 벽에 기댑니다. 기대는 것이 이때처럼 아늑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에고 기대지 않는 것이 사원의 생활 규범이 되어 있지만.
 
마음은 아무런 분별(分別)도 없이 그저 무심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복(淨福)같은 것을 느낍니다.
 
뻐꾸기 울음을 듣고 머 그리 답지 않게 엄살을 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어디 단순히 두견과(杜鵑科)에 속한 한 마리의 새소리만이아니겠습니까. 그 소리가 있기까지는 이슬이 밴 5월 아침과 맑은 햇살이며 풀꽃 내음뿐 아니라, 지난밤의 별과 두견새까지도 눈에 띄지 않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하아머니입니다.
 
그 아득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 존재에 대해 새삼스레 연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시작도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합일(合一)을 향해서 흘러가고 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누구의 말을 빌 것도 없이 나는 확신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 눈에 띄는 영역보다 뚜렷하게 비쳐오고, 영원한 것이 현실적인 것보다 더 가깝게 다가서고 있음을.
 
그러나 주말이면 이러한 모음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숲의 향기와 새소리는 놀잇군들의 확성기와 고함소리, 그리고 트랜지스터소리에 질식하고 맙니다. 시정의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연의 품에 안기어 쉴 수 있는 기회를 대개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버릇과 소음을 동반함으로써 시지푸스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소음으로 인해 영원한 모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히 현대문명의 어두운 벽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가장 깊숙한 데서 울려오는 내심의 소리마저 차단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1970년 5월 20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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