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그래 그런가, 얼마 전 가까이 있는 보육원엘 들렀더니 꽃가지마다 6월로 향해 발돋움하고 있었다. 몇 그루를 얻어다 우리 방 앞뜰에 심어놓았다. 단조롭던 뜰에 생기가 돌았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느라면 모짜르트의 청렬(淸洌) 같은 ㅅ것이 옷깃에 스며들곤 했다. 산그늘이 내릴 때처럼 아늑한 즐거움이었다.
오늘 아침 개화(開花)!
마침내 우주의 질서가 열린 것이다. 생명의 신비 앞에 서나 가슴이 뛰려고 했다. 혼자서 보기가 아까왔다. 언젠가 접어두었던 기억이 펼쳐졌다.
출판일로 서울에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禪學院)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한날 아침 전화가 걸려왔다. 삼청동에 아는 스님한테서 속히 와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하니 와서 보면 알테니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허둥지둥 직행(直行), 거기 화단 가득히 양귀비가 피어 있었다.
그것은 경이(驚異)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은 그때까지 정말 알지 못했었다. 가까이 서기조차 조심스러운 애처롭도록 연약한 꽃잎이며 안개가 서린 듯 몽롱한 잎새, 그리고 환상적인 그 줄기 하며가 나를 온통 사로잡아버렸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때부터 누가 무슨 꽃이 가장 아름답더냐고 간혹 소녀적인 물음을 해오면 언하(言下)에 양귀비꽃이라고 대답을 한다. 이 대답처럼 분명하고 자신만만한 확답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절절한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마약의 꽃이냐고 핀잔을 받으면, 아름다움에는 마력(魔力)이 따르는 법이라고 응수를 한다. 뭘 안다고…
이런 이야기를 우리 장미꽃이 들으면 좀 섭섭해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해 여름 아침 비로소 찾아낸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아침에 문을 연 장미꽃이 그 많은 꽃 가운데 하나일 수 없다. 꽃가게 같은 데 피어 있을 그런 장미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꽃에는 내 손길과 내 마음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생 떽쥐베리의 표현을 빈다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 그건 내가 물을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흙 속에 묻힌 한 줄기 나무에서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일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건이야말로, 이 '순수한 모순'이야말로 나의 왕국에서는 호외(號外)감이 되고도 남을만한 일이다.
1970년 6월 3일
法頂
[靈魂의 母音] 상면(相面) (0) | 2007.02.11 |
---|---|
[靈魂의 母音] 아직도 우리에겐 (0) | 2007.02.11 |
[靈魂의 母音] 종점(終點)에서 조명(照明)을 (0) | 2007.02.11 |
[靈魂의 母音] 아득한 모음(母音) (0) | 2007.02.11 |
[靈魂의 母音]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0) | 200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