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경기에 응원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싱거운 일이다. 무성영화(無聲映畵)만큼이나 싱겁고 맥빠질 일이다. 굳이 프로의 경우를 들출 것도 없이 운동선수들은 다분히 쇼맨십을 가지고 있다.
관중들이 박수를 보내고 함성을 울려야 신명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다. 요즘 날로 여성화(女性化)되어 가는 일간지(日刊紙)를 보고 잇으면 생각키는 바가 많다. 이렇다 할 개성도 없이 서로가 열심히 닮으려고 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국민의식의 동질적 결속을 위해 분골쇄신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구독자로서는 경제적인 부담이 다소 줄어든 이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는 그게 그거니까 한가지 신문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쩐지 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서글프다. 응원단 없이 선수들만 뛰는 맥빠진 경기장이 떠오른다.
각설, 그런데 요사이 격(格)에 벗어난 응원단이 등장했다. 그렇다, 그것은 경기장의 응원단임에 틀림없다. 팬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몰러갈 줄을 모른다. 그라운드는 교정 혹은 학교의 문전이다. 보도에 의하면, 세칭 일류교 수험생들은 선배들이 마련해 준 전세버스를 타고 대학교정을 돌며 교가를 부르는 등 기세를 올렸다고 한다.
가위 응원단의 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또 어떤 선배들은 식전 아침부터 엿가락을 쌓아놓고 입장하는 후배 수험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니,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학부(學府)의 통로가 이렇듯 비합리로 깔려 있단 말인가.
학력을 겨루는 입시장(入試場) 주변에 언제부터 이런 응원단이 생겨났을까. 으원단이 없는 수험생들의 사기는 또 어떨 것인가. 물론 그 응원단이 유사시(有事時)에는 즉각 대열을 정비, 학교 교무실 같은 데를 점거, 항의 농성할 수 있는 기동력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초조하고 안타까운 학부모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적인 의미에서라도 그러한 응원단은 마땅히 해테되어야 한다. 진학을 위해 학력을 정리하는 천진한 수험생들을 박수갈채나 받고 우쭐대는 쇼맨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1972년 1월 29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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