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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魂의 母音] 거리의 약(藥)장수

山中書信

by econo0706 2007. 2. 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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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거리에서 약장수가 뭐라고 떠벌이고 있다.
 
침을 튀기며 만병통치를 외치는 그 둘레에는 으레 어수룩한 친구들이 걸음을 멈추고 소일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만병통치 약을 자신은 먹지 않고 거리에 내다 팔기만 할 경우, 그의 혈색(血色)과 더불어 우리는 그가 파는 약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학자 E. 라모오또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학문적으로 완벽한 업적들을 대했을 때 그 사람의 전 생애를 불교연구에 바치고 있는 듯한 그 자신의 사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 문제삼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말을 보다 투명하게 정리한다면 '불교학을 다루는 사람들 그 자신의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하고 있는가?'로 요약할 수 있겠다.
 
흔히들 사람과 작품(학문적인 업적이란 말로 바꾸어도 무방하다)을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를 다루는 분야에 있어서는 그럴 수 없다. 종교가 메마른 이론이 아니고 살아 있는 행동이라면 말과 행동이 여일(如一)해야 할 것이다. 대중 앞에서는 인과(因果)를 말하면서도 그 자신은 인과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위선자의 계열에 속하고 만다.
 
그런 사람의 말에는 사카린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혓바닥 언저리에나 감미(甘味)를 적실 뿐 목구멍을 넘기면 오히려 해롭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저신의 분수는 모르고 걸핏하면 승단(僧團)이나 헐뜯는 일로써 학(學)의 훗광(後光)을 삼으려 한다.
 
그 자신은 재가불자(在家佛者)로서 기본적인 오계(五戒)도 지키지 못하면서 눈을 밖으로 향하려고 든다. 이를 가리켜 자찬훼타(自讚毁他), 즉 자기자랑만 하고 남을 헌다고 하던가?
 
적어도 종교학을 다룬느 사람은 신념의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념은 안팎이 한결같은 정진에 뿌리박고 있다. 제 자신은 먹지 않은 채 남에게만 팔려는 거리의 약장수가 되어서는 만병통치를 할 수 없다. 오늘을 살고 있는 불자(佛子)들이라면 다같이 반성해 볼 일이다.
 
1969년 1월 10일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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