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7.
함성 소리가 견디기 어려운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2014년 10월 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에 대해, FC서울 팬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열린 준결승 1차전 결과는 무승부였다. 호주에서 열린 2차전에서 웨스턴시드니원더러스가 FC서울을 2-0으로 꺾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폴리아크가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19분에 섀넌 콜이 문전 우측에서 달려들어 헤더로 추가골을 넣었다. 서울의 추격의지를 꺾어 놓은 매우 결정적인 골이었다.
웨스턴시드니가 아시아 챔피언에 이르는 길은 드라마틱했다. 16강전에서 일본의 산프레체히로시마, 8강전에서 중국의 광저우헝다,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FC서울을 꺾고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힐랄을 물리쳤다.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열강국을 차례로 꺾고 이룬 호주 클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쾌거였다.
웨스턴시드니의 우승 과정에서 팀의 감초 역할을 한 선수가 서울을 무너트린 콜이다. 콜은 2014시즌 ACL 올해의 팀에 레프트백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골을 성공시킨 상황에서 콜의 위치는 오른쪽이었다. 본래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와 라이트백 포지션을 주로 담당하는 콜은 2014시즌 ACL에서 무려 4개의 포지션을 소화한 일당백의 멀티 자원이었다.
▶ 섀넌 콜, 웨스턴시드니의 전무후무한 멀티플레이어
콜의 다재다능함은 축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콜은 만 24세의 나이에 프로 선수가 됐다. 2005년에 입단한 파라마타 이글스는 호주 내셔널 사커리그에 소속된 세미프로팀이었다. 이후 뉴질랜드의 와이타케레 유나이티드와 시드니올림픽 팀을 거쳐 프로 데뷔의 기회를 잡았다.
어려서부터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지만, 콜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도 큰 열정을 가졌다.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던 콜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3년에 웨스턴시드니대학교에 진학해 드라마를 전공했다. 여기서 연기와 글쓰기를 배웠다.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에 이곳 저곳을 떠돌다 잠시 학업을 멈추기도 했지만,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ACL 우승을 이루던 해에 콜은 3부작으로 기획한 자신의 SF환타지 소설 ‘배릴리언의 비밀: 아래의 위’를 이북으로 출간했다. 그 뒤로 줄곧 두 번째 편을 집필 중이다. 출간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은 영국 신문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유명세를 얻지 못한다고 좌절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 100%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축구 선수의 꿈에도 그와 마찬가지의 열망을 갖고 있던 콜은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질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서 울었다. 풍부한 감성을 갖춘 선수지만, 선수로서 그가 가진 장점은 기계적인 반복 훈련을 통해 얻은 것이다. 콜은 스스로를 “늘 팀에서 가장 열심히 뛰는 노동자형 선수”라고 설명한다. 그의 드리블 자세는 창조적 영감 보다는 그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통해 익혔는 지를 보여줄 정도로 반듯하다. 또다른 강점인 정확한 킥 능력도 끊임없는 연습으로 갖게 된 능력이다.
한 권의 소설책을 출간한 선수답게 “성공은 계획에서 온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준비 없이 찾아오는 성공은 없고, 때로 실패하더라도 확실한 준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 성공은 계획에서 온다…콜의 힘은 ‘부성애’
2015/2016시즌 출전 기록을 살펴보면 콜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콜은 프리시즌 훈련 초기에 전치 4개월에 달하는 부상으로 쓰러졌다. 프로 데뷔 후 가장 큰 부상이다. 만 31세. 적지 않은 나이에 찾아온 부상은 꾸준하고 다재다능하지만 한 자리에서 확고한 주전 입지를 다지지 못하던 콜에게 분명히 위험한 상황이다. 웨스턴시드니에는 젊고 열정적인 선수들이 많다. 콜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콜은 이를 악물고 재활에 매진했고, 이제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호주 신문 ‘WA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부성애’라고 했다. 콜은 올해 딸아이의 아빠가 됐다.
“재활 센터에서 젊은 선수들을 보니 자신이 되고 싶은 목표점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겐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열심히 운동해서 그라운드로 돌아가자는 동기부여가 됐다. 내 딸에게 언젠가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아버지가 잘 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노장 선수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콜은 이번 부상을 통해 몸 관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무리한 운동 때문에 찾아온 부상이었다. 프리시즌 초반에 몸 상태가 아주 좋았다. 생각 보다 몸이 준비가 안된 것을 모르고 과하게 밀어 붙이다가 골반에 문제가 생겼다.”
콜은 재활 기간 동안을 알차게 보냈다. 소설 집필 작업에 속도를 붙였고,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용 어플리케이션 개발 사업도 시작했다. “아이들이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남는 시간에 해오던 일인데 재활하면서 시간이 더 생겼다. 재활 기간을 꽉 채워서 활용했다.”
호주 대표 경력이 있지만, 콜은 호주 내에서도 최고의 선수는 아니다. 그가 펴낸 소설 역시 최고의 인기작은 아니다. 그의 교육 프로그램의 성패도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콜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계속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최고가 아닌 행복을 꿈꾼다
꼭 최고가 되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마존’에 등록된 그의 작가 프로필에는 아내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남긴 사진이 등록되어 있다. 서울 원정 경기에 나섰을 때 경복궁에 들러 찍은 사진도 확인할 수 있다. 작가 콜의 프로필에 축구 이야기는 없다. 자신의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축구 경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콜은 “난 축복 받은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 수 많은 모험으로 가득하다”고 썼다.
“독자들이 내가 본 세상을 같이 보길 바란다. 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모든 독자는 청중이자, 영웅이고, 디자이너이자 메이크업아티스트다. 독자의 상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라인을 제공할 뿐이다.”
작가 콜의 메시지에서 축구 선수 콜의 플레이도 읽힌다. 다시 서울을 상대로 넣은 골로 돌아가보자. 오른쪽 측면에서 풀백 콜이 라인을 깨고 문전까지 들어와 서울 수비의 허를 찔렀다. 저돌적인 헤더 시도를 통해 골 라인을 무너트리고 득점에 성공했다. 어려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콜은 라인과 라인 사이를 넘나드는 선수다.
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온 콜의 플레이에 더욱 더 관심이 간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는 콜의 인생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콜은 소설을 쓰는 축구 선수다. 실제로 소설을 쓴 작가지만, 그 자신의 인생이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다.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은 콜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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