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狎鷗亭)이란 호를 만든 한명회…그러나 이 호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성종 6년 때의 일이었다. 이 당시 한명회는 조정 최고의 권신답게 중국과의 외교전선에 뛰어들었으니, 조정에서 손꼽아주는 소문난 중국통이 바로 한명회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본관이 바로 청주…청주 한씨였던 것이다. 이게 또 이야기가 복잡해 지는데, 조선초 청주 한씨의 경우에는 왕실에서도 한수 접어주었던 것이다. 바로 한확의 누이들이 명나라 황실에 후궁으로 들어가 명나라 황제의 후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확에게는 두 명의 누이가 있었는데, 누나는 한비‘韓妃’로 영락제‘永樂帝’의 후궁이 되었다. 그냥 단순히 후궁인 것처럼 보이지만, 황후가 죽은 후 영락제는 황후를 들이지 않았기에, 후궁 서열 1위인 한비가 실질적인 황후였다. 영락제는 그의 손자인 선덕제에게 조선여인의 현숙함을 침이 마르게 설명했고, 이 영향 덕분인지 선덕제 역시 한확의 누이동생을 후궁으로 맞이하게 된다.)
한확과 한명회는 친척간이었다. 더구나 조선 제1의 실력자가 아닌가? 성종6년 한명회는 사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때 중국의 문사들과 필담을 하며 썼던 한명회의 호가 바로 압구정(狎鷗亭)이었던 것이다.
“공의 호가 무엇이다 해?”
“음음 압구정이라고…볼 압(狎)자에 기러기 구(鷗)자 머무를 정(停)자를 써.”
“멈춰서서 기러기를 바라보는 것이라 해?”
“뭐 뜻을 풀이하면 그렇지. 내가 워낙에 정치에 뜻이 없거덩. 그냥 한가롭게 기러기가 날아가는 거나 보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려고 하는데…우리 전하랑 정치 쪽에서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니까. 이거 참…쉬고 싶은데도 말야. 날 잡으니….”
“압구정 공의 마음은 그 호에서 잘 나타난다 해. 어쩌겠는가 해. 나라가 찾는데 응당 나서서 나라를 이끄는 나침반이 되야 한다 해.”
“역쉬! 떼놈…이 아니고, 대국(大國)사람들은 돌아가는 판을 볼줄 안다니까! 나도 뭐 하고싶어 하는거 아닌데…여하튼 뭐 원샷들 하고, 기분이다! 이거 내가 쏠테니까 부족한거 있음 어서 시키고…어이 마담! 이쪽으로 아가씨 몇 명 더 보내고…이게 뭐냐? 밴드 불러 밴드!”
이렇게 중국에서 있는 기분 없는 기분을 다 낸 한명회는 조선으로 귀국한 후에도 이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그래, 그때의 기분을 정리(?)하는 차원으로 시축(詩軸:시를 적은 두루마기)을 만드는 거야!”
한명회는 결국 이 시축을 만들어 성종에게 올리는데…
“어이 한 대감, 여기 나오는 압구정이란 게 뭐요?”
“아, 그거요. 제가 이번에 호를 하나 장만 했걸랑요….”
“거시기, 당신 하고는 좀 안 어울리는 거 같지만…여하튼 뭐 잘 받겠소.”
한명회의 호 압구정이 공식화 되는 순간이었다. 뭐 여기까지 보면, 권신 한명회가 호를 하나 짓고 끝나는 건가 보다 하겠는데, 여기서 멈출 한명회가 아닌게 문제였다.
“이 참에 내 호를 딴 정자를 하나 짓는 게 어떨까? 오케이 결정했어!”
이리하여 한명회는 한강변에 자신의 호를 딴 압구정(狎鷗亭)이란 정자를 짓게 되는데…문제는 이 정자가 너무 럭셔리하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냐! 백성들은 뼈골이 휘어지도록 일하는데, 누군 한강변에서 정자나 짓고 말야….”
“쉬파…가뜩이나 양극화 현상 땜에 살 의욕이 없는데 말야…. 누군 한강변에서 놀고, 누군 평생가도 집 한 채 못 사고…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사람들은 밤에 몰래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 정자에 대한 테러를 가하기 시작하는데…
“정자는 있으나 그곳에 돌아가 쉬는 자 없으니 누구라 갓 쓴 원승이라 일러 예이지 않으리요”
압구정 벽에 누가 써놓은 낙서였다. 생육신인 김시습 역시 압구정을 비꼬는 시를 지을 정도로 압구정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압구정에 대한 비난의 결정판은 압구정의 현판 밑에 써놓은 한 글자였는데, 익숙할 압(狎)자에 깨칠을 하고 그 위에 누를 압‘壓’자를 적어 넣은 것이었다. 당시 백성들의 민심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성난 민심을 지켜본 한명회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았겠지만, 한명회…절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니 쉬파…, 내가 정자를 기증하던, 딸을 잡던 간에 네들이 뭔 상관이여? 이것들이 말야. 오냐오냐 해줬더니 권력 무서운 줄을 몰라….”
그렇다. 한명회 정신 못 차렸다. 이런 상황에서 압구정이 조선의 국내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로 비화되려는 조짐을 보이려고 했으니…초특급 대하 울트라 펜션 사극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은 다음회로 이어진다. 커밍 쑨!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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