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못낳게 된 요인은 남편에 있을 수도 있고 아내에게 있을 수도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생존의 가치가 주어지지 않았던 전통사회인지라 불임(不姙)이라는 결격(缺格)을 음성적으로 호도하는 민속이 꽤 발달해 있었다.
영화화까지 되어 국제적으로 알려진 씨받이는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때 저질러졌던 한국판 대리모(代理母) 풍습이다. 야반에 직업적으로 아이를 낳아주고 다니는 씨받이 부인을 보쌈으로 싸들고 와서 눈을 가린채 씨를 받고서 다시 보쌈으로 싸들고 나감으로써 씨받는 집이나 씨를 내린 사람의 정체를 모르게끔 진행이 된다. 이렇게 하여 열달 만에 낳은 아기가 아들일 때 그 씨받이 대가로 논 한마지기에서 서마지기를 주고 낳은 아기가 딸일 때는 찾아가지 않는 대신 양육비조로 논 서마지기 내지 다섯마지기를 주는 것이 한말(韓末)까지의 관례가 돼있었다.
아무나 씨받이 부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친형제나 사촌의 남녀비율에 있어 남아가 우세해야 하며 친-외가의 조부모나 부모가 회갑을 넘겨 살아야 하고 몹쓸병에 걸려 있는 사등친이 없어야만 한다. 그만큼 유전질(遺傳質)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씨받이와는 반대로 남편이 아이를 낳지 못할 때 뜨내기 소금장수나 땜장이 등 뜨내기 사나이를 매수, 은밀히 아내와 동침시켜 수태(受胎)시킴으로써 자기 자식인체 혈통을 잇는 습속도 있었다. 이를 씨내리라 했다.
씨내리의 전통은 유구하다. 고려 때 밀직사부사의 벼슬에 있던 허유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음을 고민하다 가문의 어른들과 의논한 끝에 아내의 허락을 얻고 건장하고 병이 없는 종 하나를 골라 자신의 아내와 동침시켜 아들을 낳고 있다. 그후 허유는 임포 콤플렉스와 질투를 감당할 수 없어 씨내리를 한 아내의 양쪽 귀를 잘라내는가하면, 종의 코를 뚫어 고삐를 꿰는가 하면, 국부를 잘라내기까지 하고 있다. 이 모두 아들을 낳아야만 삶의 의미가 부여됐던 사내자식광이 파생시킨 비정적(非情的) 성풍속들이 아닐 수 없다.
한데 그만한 비정적인 요구가 없어졌는데도 아기 못낳는 여인을 위한 인공수정이라는 미명으로 전국 40여개 병원에서 월 2백여회의 씨내리가 성행하고 있다 한다. 더욱이 어느 한 병원에서 내린 그 씨의 유전질이나 에이즈 등 각종 질병의 감염 여부도 검사하지 않고 한번 내린 씨값으로 10만~20만원 받고 아무한테서나 구해 마구잡이로 내렸다 해서 의료윤리와 그에서 야기될 후유증을 두고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옛날에 비해 내리고 받는 씨값도 형편없고, 씨의 유전질이나 병균관리도 형편없으며, 생명의 씨앗에 대한 존엄마저 더 더욱 유린돼 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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