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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세자빈 간택(揀擇)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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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세자(世子)가 열살 안팎이 되면 세자빈(世子嬪)을 정하는데, 그 고르는 절차를 간택이라 한다.

 

그 첫 절차가 혼기에 이른 팔도의 처녀 모두에게 금혼령(禁婚令)을 내리는 일이다. 일단 조선 팔도의 모든 처녀는 예비 세자빈으로 간주하는 것이 된다. 이어 팔도감사들이 망(천망)에 들만한 처녀의 신상을 적은 단자를 적어 올리는데 이를 초간이라 한다. 30명 내외의 초간통과 처녀 가운데 재간에 진출하는건 7명이요, 이 가운데 산간에 오르는 자는 겨우 3명 뿐이다.

 

병자호란때 볼모로 잡혀가 갖은 고초를 다 겪었던 소현세자의 세자빈 간택 때 있었던 일이다. 삼간에 오른 3명의 처녀 가운데 권씨성의 소녀가 있었다. 삼간 때는 궁중에 초대되어 낮것이라 불리는 음식을 대접받으며 관찰받게 마련인데, 이 권씨녀는 젓가락을 두고도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가 하면 실성한 것처럼 히죽히죽 웃는 등 하여 집짓 망에서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궁궐을 나와서는 멀쩡했으며 후에 부왕인 인조대왕이 그 말을 듣고 그 작은 소녀의 꾀에 넘어갔다고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간택에 오르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던 것은 비단 권씨녀 하나에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간택이 있을만 하면 혼기에 이르지도 않은 딸들을 미리 여의는가 하면 심지어 독초(毒草)를 발라 피부병을 가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왜 부귀영화를 안겨다 주는 왕비로서 선택받는 그 절호의 기회를 그렇게 기피하고 두려워 했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왕비가 되면 외척에 세도가 형성되고 세도가 형성되면 문벌이 성하고 문벌이 성하면 멸문-곧 가문을 망치는 것이 기필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일단 간택의 망에 들면 선택되고 안되고와는 관계없이 파산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처녀의 옷차림에서부터 가마 빌리는 값이며 유모와 몸종들의 치장에 간택하는 관리들의 과분한 금품요구 등 빚더미에 올라앉게 돼있었다. 셋째, 간택의 망에 올랐던 처녀는 살이 끼었다하여 정상적 결혼상대에서 소외받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삼간택에서 선택 받지 못한 처자는 처녀로 늙어야 했던 것이다.

 

이웃 일본 왕실에서는 세자빈이 간택되어 온나라 안이 축제기운으로 후끈 달아 오르고 있다. 간택이 시행되는 동안 나라안이 썰렁해지고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서만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에서는 간택하는데 법석을 떤 전례가 없다는데 구구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는 구력(舊力)의 구심점으로서 왕실에서의 국민적 귀의와 향수가 그만한 열기로 표현된 것이요, 복고주의의 무의식적 발로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독일의 나치 복고도 한창인 이때인지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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