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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고잔도(古棧道)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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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삼국지의 유비 제갈량이 다스렸던 촉나라ㅡ

 

지금의 사천성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높은 산들에 마치 주발처럼 둘러싸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로지 수로 한 곳과 육로 한 곳만이 외계로 틔었는데 수로는 동쪽으로 난 양자강 삼협이요 육로는 북쪽으로 장안과 통하는 검문길이다. 양귀비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이 안록산의 반란으로 쫓겨가던 피난길이기도하다. 현종을 따라 장안을 떠난 민원의 대상 양귀비는 처치돼야 한다는 대세를 어기기에는 현종도 역부족이었다.
 
귀비는 현종의 품에 안기어 부처님에게 마지막으로 빌게 해달라고 애원했고, 현종도 "다른 좋은 세상에 태어나거라" 하고 울먹였다. 이렇게 하여 불당 배나무 아래에서 목졸려 죽음에 이르게 하고 피난길을 재촉했다.
 
촉나라에 들면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험한 촉도'라고 이백이 읊었듯이 산이 험악하고 물살이 센 온통 잔도였다. 밑에 물이 흐르는 벼랑에 구멍을 뚫어 통나무를 박아 지르고 그위에 널빤지를 깔아낸 다릿길이다. 그 잔도를 걷는데 비가 열흘을 멎지 않고 내렸다. 그 빗속에서 말방울 소리만이 양귀비를 잃은 현종의 가슴을 울적하게 하여 그 심정을 '우림령'이란 노래로 지어 양귀비에 대한 통한의 정을 달래기도 했다.
 
이 촉나라 잔도를 따라 도망치는 현종은 '명황행촉도', '당촉잔' 등 국망 경세의 테마가 되어 중국 역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였다.
 
세종대왕은 박팽년 이개 등에게 명하여 명황(唐 玄宗)과 양귀비, 주왕과 달기를 그린 병풍이 많았음을 들어 이를 거울삼아 경계하고자 명황의 고사를 모으고 그 그림을 그려넣게 하여 '명황계감'이라고 이름을 내렸던 것이다. 당시 안평대군과 가까이 지내던 화가요 그의 꿈 이야기를 그린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안견으로 하여금 이 고잔도를 다섯폭의 두루마리 그림(長軸圖)으로 그리게 했을 것이며 일전에 발굴됐다고 보도된 명황 고잔도, 장축도가 바로 그때 그려진 그림일 것이라는 것이다. 진품으로 확인되면 그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이요 가장 값진 발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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