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선언 - 김영안
시대는 확실히 좋아졌다.
농민 열 명 노동자 다섯 명만 모이면
비싼 대학물 먹고 나와 할 일없는 놈들
어느 놈이든 한 놈 끼어들어
이름을 만든다
명예를 만든다
기구를 만든다
전봉준을
전태일을
진리라는 책갈피 속에 모신다.
4월 5일 팔아먹은 놈들
노동자가 투신자살을 하면
재야는 투쟁거리가 생겨 좋고
농민이 폭삭 망하면
야당은 발언감이 생겨 좋으리라
어림없는 놈들
우리가 논밭에 엎드러져
이 뜨거운 여름을 지고 있을 때
위원은 그의 마누라와 2명인
'강경민주투사선두주자연합회'
'극렬민중운동가범세계적협의회'를 만들어 놓고
너희는 이곳저곳 얼굴을 내밀고 다니며
삶보다 먼저 투쟁을 교육시켰다
눈물이 많고 맘이 보드란 사람들
그대들의 더 온당한 투쟁은
이들의 이름 없는 시간 속에 들어와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라고 불렀던 해직교수는
우상이 가고 난 봄날 아침 학교로 돌아가고
땅을 빼앗겨도
국졸인 이유로 나는 야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손목을 잃어도 우리는
국졸인 이유로 기계를 떠나지 못하는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끝까지 우리의 투쟁은 멈출 수 없는데
노조와 농민회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시회과학을 공부하고 온 학생의 애국심만을 믿고
우리는 계속 유인물만 받아 보고 있을까
아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노동자의 각성
농민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그대들은 애써 말하려 하지 말라
전봉준을 전태일을 뺏어
책갈피 속에 가두지 말고
저임금
저곡가에
목숨이 모져 살아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해 두지도 마라
기독교회관 금요기도회에서
자유실천문학회 맨 뒷자석에서
외로이 울다
외로이 울다 도망쳐 온
우리 불쌍한
쌩 알몸들
이젠 우리가 모여 할 때다
농약 먹고 목 매고 분신자살로 죽지 말고
우리들의 어둑한 거리에 혼으로도 살지 말고
이젠 우상놈 다리 후려칠
낫 놓고 기역자 한자 한자 쓰는
기 터지는 시로 살아날 때다
수천 년 알몸으로 뜨겁고 차운 것 배운
양심의 소리로 살아
분노로
선언으로 살아
너희들의 오래도록 긴
책갈피 속
십자가 속
부처님 마빡 속
가을비 우산 속 룸싸롱의 계집 속
남산 위의 둥근 달 단상 위의 대머리
그 철판보다 두꺼운 철판바닥을
용서할 것인가
어림없다 땀 흘리지 않는 놈 공자 맹자 따위는
함석헌도 강원용도 김대중도
노동으로만 먹고 살고
죽음으로만 말해 온 우리에게
한낱 티끌이다
어이 할 것인가
어이 할 것인가
전태일이 노동자 약혼 반지 속에 있고
전봉준이 농민의 제상 위에 있을 터인즉
교회는 하나님을 석방하고
학문은 진리의 포승줄을 풀어
그것들이 일하는 사람 등 아무데나 가 붙게 하고
그것들이 일하다 죽은 혼 아무데나 가 절하게 하고
목사 중놈 신부 다
군인과 학생과 교수 다
그런 신 앞에 횡으로 서 절하게 하고
우리가 노동하다 지쳐 여름이 지겨울 때면
우리도 사무실로 가 동지의 전화도 받고
자전적 에세이도 쓰고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라고
거침없는 논문도 써 돈도 받고
우상은 없으되 민중은 무섭고
율법이 없으되 세상은 고른
참말로 믿어도 되고
참말로 하나이 되는
삼청교육대 애들이 들고 뛰던 통나무처럼
우리 이 미치게 뜨거운 역사를 이고 져야겠지 않은가
벗이여 동지여 친구여
우리들의 크나큰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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