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꿈마다 깨우치며 오소서 - 강은교
어서 어서 오소서
꿈마다 깨우치며 오소서.
참 바람 우우우
울며 지나가는 길 위에
쓰러지고 쓰러져도 삼백예순 번
다시 쓰러지는 고갯마루
옷 다 벗은 실가지 위에
헤매는 눈물 위에
주름살 위에
가난 위에
빼앗김 위에
그리고 그리고
장엄한 무덤 위에
떠날 수 없어라
떠날 수 없어라.
우리들의 죽음 위에
우리들의 탄생 위에
부르튼 발목이란 발목마다
죄 무서리 내려앉는
아시아의
지구의
우주의
이 한 모퉁이
맨살에 비벼오는 눈발
갈수록 시리고 시린 곳
아, 어서 어서 오소서
와서 흐르소서.
우리들의 이름은 잡풀
재와 재 사이
별과 별 사이
부서져 더 부서징 것없는
남루한 모래 뿌리
기억하소서, 그 모래밭을
모래밭에 떨던
기진한 한낮을
뜬 구름들도 한 켠으로 몰려서서
흩날리는 수천 혼령들
세고 있던 걸,
강물도 이미 저 혼자
강물 아니고
바다도 이미 저 혼자
바다이지 못한 때
아 오소서, 당신
어둠의 어머니시여
슬픔의 어머니시여.
떠날 수 없어라
떠날 수 없어라
우리들 이제
꽃으로 피어나리
낯익은 꽃잎 꽃잎
새털 하늘에 묶어
빈 들판
빈 계절
춤추어 날지니
어서 오소서, 들려 주소서
어둠이 빛 일으키는
소리를
슬픔이 기쁨 이끄는
이끌고야 마는
소리를
아, 우리들의 어둠
빛의 딸의 발자국 소리
아, 우리들의 슬픔
기쁨의 아들의 속삭임
어서 어서, 우리들의 뼈 밑에
꿈마다 깨우치며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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