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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믿고 기다리는 야구 - '휴먼 볼'의 봄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2. 11. 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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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3. 08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일본의 오사다하루(왕정치) 감독이 내세운 야구는 이른바 '스몰 볼(Small Ball)'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아지 기옌 감독이 표방한 야구, 아메리칸리그 서부 1위 팀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다. 경기 중에 일어나는 작은 플레이, 세밀한 부분의 틈을 찾아 그 부분을 파고드는 야구다. 홈런보다는 희생번트와 도루, 장타보다는 빠른 발과 짜임새 있는 팀 플레이를 우선하는 야구다.

 

오사다하루 감독은 장타자보다는 교타자가 많고, 대부분 도루능력을 지닌 선수들로 이뤄진 일본 대표팀의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몰 볼은 수준차가 거의 없는 야구에서 작은 부분의 깊이를 추구해야 우열이 갈라진다는 철학에서 출발한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등 최정상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 틈에서 승부의 갈림길은 작은 부분에 있고, 그래서 그 부분을 파고든다는 논리다.

 

그럼 그 '스몰 볼'을 꺾고 아시아 지역 1위로 8강에 오른 한국 대표팀의 김인식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는 어떤 스타일인가. 김인식 야구는 흔히 '기다림의 야구' '믿음의 야구'로 불린다. 한마디로 작전보다는 사람이 우선인 야구다. 이름을 붙이자면 '휴먼 볼(Human Ball)'이다. 사람을 택하는 데 무게를 두고 그 사람을 믿고, 기다린다.

 

WBC 아시아 지역 1라운드에서 김 감독의 선수 기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투수 로테이션과 교체 타이밍은 완벽했다. 투수의 특성과 능력을 정확히 파악했고, 상황에 정확하게 대처해 성공했다.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박찬호를 마무리로 기용한 게 대표적이다.

김 감독은 박찬호의 구위만 본 게 아니고, 박찬호가 갖고 있는 경험과 능력을 믿었다. 또 대만전 에서 홍성흔, 일본전에서 조인성을 선발 포수로 기용한 것도 그렇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한 선수를 기용한 뒤 그 선수를 믿고 맡겼다. 두 번의 카드는 모두 들어맞았다.

 

김 감독은 "사람이 하는 일에 정해진 게 어딨어. 상황에 따라 다르고, 상대에 따라 다르고…. 야구가 그렇잖아. 사람이 하는 건데 사람을 잘 고르고, 그 사람을 잘 부려야지. 작전에 사람을 맞추는 건 나하고는 안 맞아"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의 컨셉트는 사람이다. 김 감독의 야구는 숫자(기록)에 의존하는 스몰 볼보다 따뜻한 체온을 지녔다.

 

사람을 중시하는 건 조직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경영의 기본과도 일맥상통한다. 야구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야구도 경영도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는 신념. 그 소신으로 김인식 야구는 일본의 콧대를 꺾었다.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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