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산골에 수피아라는 예쁜 이름의 할머니가 살았던 기억이 난다. 일찍 개화되어 기독교를 믿어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숲에 버려졌다가 살아난 아이라서 얻은 이름이다.
옛날 산촌에는 아이가 병들면 숲속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 뉘어놓고 간병하는 관행이 있었고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나면 숲의 아이ㅡ곧 수피아로 불렸던 것이다. 인가로부터 격리시키는 피병관행이랄 수도 있으나 병을 낫게 하는 숲의 치유효과와도 무관하지 않다.
독수리 깃에는 반드시 잎이 푸른 삼나무 가지가 꽂혀있게 마련이며 잎이 시들면 갈아꽂곤 한다. 독수리보다 무서운 새가 없으니 위장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비단 독수리뿐 아니라 많은 새들이 산란을 앞두고 푸른 나뭇잎을 깃속에 깐다는 관찰보고도 있다. 그 나뭇잎들을 살펴보니 테르펜이라는 휘발성 물질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산되는 수종인데 예외가 없었으며 이로써 주변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함임을 알아낸 것이다.
테르펜에는 나무에 따라 강장·항생·진통·구충·항염·이뇨·항종 등 다양한 약효가 내포돼 있으며 각기 다른 테르펜끼리 만나 상생작용도 한다.
조상들 떡갈나뭇잎에 떡을 싸서 쪄 먹었던 것이며 솔잎에 떡을 쪄 송편을 빚어 먹었던 것은 그 잎에서 향내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떡갈잎은 장 내 세균을 살균하고 솔잎은 곰팡이를 예방하는 항균 테르펜의 발생원이었다. 백일해 앓는 아이의 방에 분비나무를 베어 한 다발 들여놓는데 공기 중 미생물이 그 테르펜에 의해 10분의 1로 감소하는 것으로 실험되기도 했다. 별의 별 나무가 제각기 고유 테르펜을 발산, 상생작용을 하고 있는 그 숲에 앓는 아이 뉘어놓는 선조의 지혜는 선견이 아닐 수 없다.
산림청은 식목일을 계기로 한국 산림의 공익가치를 50조원으로 추산하고 작년 한해 동안 국민 1인당 혜택을 돈으로 따져 106만원꼴이라 했다. 대기정화가치 수원유보가치 토사방지가치 산림휴양가치 야생동물보호가치 등으로 대별하여 계산한 것이다. 거기에 계산되지 않은 질병치유가치를 얹으면 아마 60조원을 웃돌 것이다. 그래서 수피아 할머니 생각이 절실한 식목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