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4. 29
소설가 박완서의 수필집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속 깊숙이 잠재한 환호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간직한 환호 욕망. 박완서는 이어갔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이 나서 마음껏 환성을 지를 수 있었던 기억도 아득하다’고 했다.
그런데 꽉 막힌, 어두컴컴한 노래방에서는 그 욕망 다 풀 수 없다. 대신 야구장이 제격이다. 요즘 한껏 타오른 야구장은 환호 욕망을 배출하는 가장 짜릿한 장소다. 3만명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그곳.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그래서 사직구장을 ‘커다란 노래방’이라고 했다.
단지 환호만이 아니다. 야구장은 보기 드물게 합법적인 단체 비난이 허락된 곳이다. 소리 높여 상대를 야유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이대호의 장외홈런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
그래서 사직이 또 미친다. “아주라!”에 “마!”를 겹쳐 외치면 속이 다 후련하다. 특히 “마!”에 미치면 야구장에 안 오고는 못 배긴다.
“마!”는 견제 야유다. 상대 투수가 우리팀 1루주자를 견제하려고 견제구를 던지면 사직구장은 전체가 “마!”소리로 뒤덮인다.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둥둥둥 북소리 다음에 곧장 “마!”가 터져나온다. 반복해서 세 번. 이게 한 세트다.
이 견제 야유는 다른 팀에도 퍼졌다. 같은 경상도 대구구장도 견제구가 나오면 “마!”가 터진다. 일종의 전염이다.
충청도로 넘어오면 조금 달라진다. 한화의 홈인 대전구장의 견제 야유는 “뭐여! 뭐여!”다. 그리고 뒤에 “쪽팔린다~야”가 붙는다. KIA의 홈 광주구장에서는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 때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흘러 나온다. “아야~날 샌다”.
인천에도 견제 야유가 있다. SK의 문학구장에서는 정말 야유다운 야유가 빗발친다. “야! 야! 그러면 안되지이~”. 그 가락이 거의 ‘용용 죽겠지’ 수준이다.
서울팀 LG의 견제 야유는 “앞으로 던져라”다. 옆으로 던지지 말고 앞으로 던지라는 뜻이다. 같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지만 두산은 견제 야유가 없다. 그저 입을 모아 “우~”를 외치는 정도다.
야유는 활력소다. 솔직히 함께하는 욕만큼 신나는 게 있을까. 게다가 주위에는 수천명이나 되는 동지들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팬들은 야구장에 야유를 하러 간다.
역대 최고의 견제 야유는, 이제는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의 그것이었다. 평균관중 2136명. 그다지 효과없는 견제 야유. 그래서 현대는 노래를 틀었다. 상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수원구장에는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가 나왔다. 그 가락은 어쩐지 꽤나 구슬펐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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