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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축탁축(淸蹴濁蹴)] ‘발롱도르 지존’ 메시, 한국 축구를 어떻게 볼까?

--최규섭 축구

by econo0706 2022. 9. 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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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01. 

 

명품은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나 보다. 빛을 잃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쌓인 세월의 더께를 바탕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듯싶다.

역시 신계의 사나이다. 또한 발롱도르(Ballon d’or: 황금빛 공)의 지존이다. 리오넬 메시! 누가 그를 인간계로 끌어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 세계 으뜸의 자리에 구축한 그의 철옹성은 아직 붕괴의 조짐이 엿보이지 않는다.

메시, ‘발롱도르 지존’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 통산 7회 수상

메시(파리 생제르맹)가 또 한 번 발롱도르 역사에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11월 30일(한국시간) 발표된 2021 발롱도르의 주인공은 두말할 나위 없이 메시였다. 2009년 첫 수상 이래 일곱 번째 입맞춤이라 더욱 달콤할 수밖에 없었다. ‘메시의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한 금자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 발롱도르를 수상한 리오넬 메시 / OSEN


세계 각 국가대표팀과 클럽의 감독·선수와 축구 기자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발롱도르에서, 메시는 613점을 얻어 영광을 안았다. 올해의 베스트 스트라이커상을 받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이에른 뮌헨·580점)를 33점 차로 따돌렸다.

1956년 발원한 발롱도르 역사에서, 메시가 밟아 가는 발자취는 눈부시도록 화려하다. 65년 동안 세계 축구계의 흠모 대상이었던 황금공 트로피를 가장 많이 품에 안았다. 메시가 발롱도르와 맺어 온 짧은 14년의 인연을 생각하면 믿기 힘든 행보다. 2007년 최종 후보에 뽑히며 비로소 발롱도르에 얼굴을 내민 메시가 아닌가.

각종 기록에서, ‘최초’·‘최다’와 깊은 인연인 메시일지라도 발롱도르에서만큼은 그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전 세계 축구인이 평가하는 최고 선수상이라는 발롱도르의 가치를 고려하면 그렇다.

2009년 처음 발롱도르를 차지한 메시는 2012년 뜻깊은 최초 기록을 세웠다. 통산 첫 4회이자 첫 4년 연속 수상을 이뤘다. 그 전해 요한 크라위프, 미셸 플라티니, 마르코 판 바스턴과 어깨를 나란히 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쾌거였다. 2013~2014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밀려 잇달아 2위에 그쳤던 메시는 2015년 정상을 다시 빼앗았다.

물론 최다 수상 기록도 메시가 갖고 있다. 올해까지 7회 발롱도르를 차지하며 앞으로 그 누구라도 꿈꾸기 힘든 지경에 올라섰다. ‘영원한 맞수’로 손꼽히는 호날두(5회)가 쫓고 있다고 하나, 종전과 비교하면 내림세로 접어든 기색이 역력해 전무후무한 대기록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최다 기록도 눈에 띈다. 역대 연속 최고 후보 지명이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햇수로 11년 연달아 발롱도르 최종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최종 후보 최다 지명에서도 1위 자리는 메시(13회)의 몫이다.

메시는 ‘황금 신발’ 최다 수집 기록도 갖고 있다. 한 시즌 동안 유럽 1부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골잡이에게 수여하는 유러피언 골든슈를 6개씩이나 차지했다. 역시 2위는 호날두(4회)다.

 

▲ 발롱도르를 수상한 리오넬 메시 / OSEN

 

우리나라에서도 뿌리내릴, 발롱도르 같은 시상 제도를 그려 본다

축구 분야에서, 발롱도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와 정통성을 지녔다. 세계 축구를 관장하는 FIFA(국제축구연맹)가 시상하는 ‘FIFA 올해의 선수’보다도 높게 평가받을 정도다.

1956년 첫 잔을 띄운[濫觴·남상] 발롱도르는 한 차례 통합과 분리 과정을 거쳤다. 2010년 FIFA 올해의 선수와 묶여 FIFA 발롱도르의 형태로 2015년까지 상이 수여됐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 발롱도르 이름을 되찾았다.

발롱도르를 시상하는 주체는 축구 전문지인 ‘프랑스 풋볼(France Football)’이다. 곧, 국제 축구 기구가 아니라 한 언론사에서 시상하는 제도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영욕을 겪으면서 오늘날 으뜸의 영광을 누리는 시상제로서 자리매김했다.

한국엔, 언론사 주최의 축구 시상식이 열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시상 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각종 스포츠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프로축구 시상식이 저마다 열기를 뿜곤 했다. 일간스포츠와 KBS가 공동 제정한 프로축구 골든볼·골든슈는 대표적 시상제였다. 햇수로 22년간(1984~2005년) 존속하며 초창기 한국 프로축구 발전에 이바지했다. 또한,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스포츠 서울 제정·1987~2007)과 한국 축구 대상(스포츠 조선 제정·2004~2007)도 일정 부분 축구 발전에 한몫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시상 주최사 간의 자존심 경쟁, 비슷한 시상식 명칭과 시상 부문, 수상자 중복 등이 걸림돌로 나타나면서 결국 폐지의 수순에 이르렀음은 안타깝다. 특히,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시상식 명칭에 K리그를 쓸 수 없다고 제동한 점은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때 그 시절이 그려진다. 경쟁 없는 체제는 자칫 도태의 씨앗을 낳을 수 있다. 발롱도르가 FIFA의 견제를 딛고 굳게 뿌리내린 모습은 그만큼 큰 울림으로 가슴속을 파고든다. 우리나라에도 축구 기관을 떠난 객관적 단체가 제정한 축구 시상 제도가 다시 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그 날이 기다려진다. 희망봉에 닻을 내릴 그 순간을 맞이하려면 외풍에도 꺾이지 않는 확고한 의식과 투자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최규섭 /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자료출처 :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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