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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史說] 승부차기의 압박감

--손장환 체육

by econo0706 2022. 9. 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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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7. 14 

 

7월 12일 유로 2020 결승에서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했다.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의 3,4,5번 키커가 연속 실축하는 장면을 보면서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실축한 세 선수가 하필이면 모두 흑인이라니. 더구나 성공한 1,2번 키커는 백인이었기에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났다.

1960년 시작한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잉글랜드는 아직 우승이 없다. 이번이 첫 우승의 기회였고, 더구나 홈구장인 웸블리에서 결승전이 벌어졌다. 선취골도 잉글랜드가 넣었고, 승부차기에서도 2-1로 앞서갔다. 그런데 홈팬들 앞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알다시피 잉글랜드는 '훌리건'의 고향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게 인종차별로 연결됐다. 불행한 일이다.

승부차기의 관건은 압박감이다. 압박감을 덜 느끼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일반적으로 승부차기 성공률은 80%가 넘지만 큰 대회일수록 성공률이 떨어진다.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 성공률은 70%다.

가장 유명한 승부차기 장면은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에서 나온 로베르토 바조의 실축이다. 9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스타였던 바조는 브라질과의 결승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5번 키커로 나왔다. 어이없는 홈런볼을 날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던 '말총머리' 바조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승부차기도 명승부로 기억한다. 솔직히 다섯 명이 다 성공시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16강이라는 목표를 이미 초과 달성한데다 온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기가 살아난 결과였다. 그때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기쁜 얼굴의 홍명보를 봤다.

차범근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페널티킥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 308경기에서 총 98골을 넣어 외국인 선수 최다득점을 기록(1999년에 깨졌다)했는데 이 98골이 모두 필드골이다. 손쉬운 페널티골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도 차지 않았다. 이 기록은 분데스리가 10년간 경고(옐로카드)가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는 사실과 함께 차범근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종종 인용된다.

 

▲ 승부차기의 관건은 압박감이다. 압박감을 덜 느끼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사진=UEFA,UEFA EURO 2020 / 이코노텔링그래픽팀.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일부러 안 찬 게 아니라, 못 찼어. 실축했을 때의 부담감을 견디기 힘들었어. 나보고 차라고 해도 거절했어. 내가 겁이 많잖아."

천하의 차범근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이런 걸 보면 그 부담을 이겨내고 성공시키는 선수들은 진정 강심장의 소유자들이다.

잉글랜드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승부차기 순번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승부차기 자체의 압박감도 큰데다 1번과 5번의 부담은 최고조이기에 경험도 많고 배짱이 좋은 선수를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1번을 케인으로 한 것은 수긍할만하다. 그런데 만 19세의 사카를 마지막 5번에 배치한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카의 실축으로 패배가 확정됐으니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몰리는 게 당연하다.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선수들을 가장 잘 아는 감독 나름으로는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카의 부담이 얼마나 컸을 지는 상상이 된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선수는 역적'이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한 승부차기는 잔인한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손장환 편집위원 inheri2012@gmail.com

자료출처 : 이코노텔링(econotelling)(http://www.econotell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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