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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생각] 선수의 백넘버는 숫자 놀이가 아니다

--김병윤 축구

by econo0706 2022. 10. 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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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08.

 

1863년 잉글랜드에서 탄생한 축구는 당시만 해도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그때 선수들은 정장에 가까운 복장을 착용한 채 경기를 가졌다. 그 후 1885년 프로축구가 합법화되면서 누구나 축구를 즐기게 되었고, 이때부터 선수들의 복장은 현대축구의 유니폼과 ‘대동소이’한 유니폼을 착용하기 시작하여 경기를 하는 변화가 왔다.

세계축구는 이 같은 복장 형태의 흐름에서 2-3-5 포메이션 탄생과 함께, 지금의 아라비아 숫자를 상위 유니폼 등 뒤(등번호)에 새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선수 배번(Number)의 시초로, 1933년 12월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인 에버튼과 맨체스터 시티의 대전이었다. 이때 에버튼은 1∼11번의 배번을, 맨체스터 시티는 12∼22번까지의 번호를 상위 유니폼 등 뒤에 새기고 나왔는데, 골키퍼서 부터 포지션에 따라 각 팀이 1~11, 12~22번의 배번을 부착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 선수 배번은 1954년 스위스 FIFA월드컵에 이름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등번호를 부여받는 방식으로 등번호가 처음 등장했고, 그 뒤 1958년 스웨덴 FIFA월드컵을 앞두고 각국 협회에서 선수들 등번호를 정해 알려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하의 바지의 한쪽 끝에도 배번을 새기게 되었으며, 1990년에 들어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으로 FIFA가 주최하는 모든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유니폼 앞가슴에도 조그만 배번을 새겨야만 했다.

 

이 같은 세계축구 배번의 흐름 속에서 한국축구는 축구가 처음 도입된 1882년 이후인 1900년대를 전.후로 축구를 유희로 즐기는 사람들의 복장은 긴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상위는 저고리 앞섶이 펄럭일까봐 조끼를 입은 형태였으며, 머리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망건을 쓴 채 대부분 짚신을 신었다. 경기를 할 때에는 한 팀은 조끼 다른 팀은 배자를 입거나 조끼를 뒤집어 입어 상대팀과 구분 지었다. 이런 한국축구 복장도 세계축구 복장 변화와 더불어 차츰, 세계축구 복장 흐름에 동참하는 가운데 마침내 상위 유니폼 등 뒤에 배번을 새기기에 이르렀다.

선수의 배번 부착으로 심판(Referee)은 선수 식별이 더욱 쉬워졌고 축구팬들 역시 선수 배번에 의한 선수 인식이란 등식이 정착되기 시작하여, 선수 배번은 곧 팬 서비스라는 의미를 갖는 계기가 됐다. 축구에서 선수 배번은 자신의 얼굴과 같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배번이 10번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은, 팀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개인 기량과 득점 능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인식되어진다. 그만큼 선수 배번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시에 선수에게는 존재감의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축구 선진국인 유럽에서는 선수 배번만으로도 주전 및 비주전 선수를 쉽게 구분 지을 수 있으며, 포지션 또한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배번과 포지션은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즉 베스트 일레븐 선수 배번은 시계바늘 방향으로 1~11번으로 일정하게 배열(골키퍼: 1번, 수비수: 2,3,4,5번, 미드필더: 6,7,8,9번, 공격수: 10,11번)되어 있어, 경기장에서 한국과 같이 100번에 육박하는 배번을 달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 프리미어리그 등번호 최고의 1~18번이 팬투표로 결정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전드 수문장 피터 슈마이켈이 1번을 차지했다. 페트르 체흐, 데이빗 시먼, 다비드 데 헤아 등 쟁쟁한 골키퍼들을 따돌리고 62%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2번은 게리 네빌의 몫이었다.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카일 워커 등을 제치고 62%의 지지로 1위에 올랐다. 백넘버 3번은 첼시 전설 애슐리 콜의 몫이었다. 데니스 어윈, 파트리스 에브라, 가레스 베일 등을 돌려세웠다.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버질 반 다이크를 따돌리고 최고의 4번으로 선정됐다. 5번과 6번은 리오 퍼디난드와 토니 아담스가 거머쥐었다.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차지였다. 에릭 칸토나, 루이스 수아레스, 데이빗 베컴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보다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

스티븐 제라드(54%)는 프랑크 람파드(46%)를 근소한 차로 제치고 최고의 8번으로 뽑혔다. 9번과 10번은 앨런 시어러와 데니스 베르캄프의 몫이었다. 베르캄프(36%)는 웨인 루니(33%)를 간신히 따돌렸다. 라이언 긱스는 최고의 11번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올리비에 지루(12번), 미하엘 발락(13번), 티에리 앙리(14번), 네마냐 비디치(15번), 로이 킨(16번), 케빈 더 브라위너(17번), 폴 스콜스(18번)가 영예를 안았다. 특히 앙리(83%)와 스콜스(79%)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였음을 입증했다. / 이균재 기자dolyng@osen.co.kr OSEN 


지금은 배번에 대한 FIFA 규정과 관념이 많이 퇴색하여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잉글랜드나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을 보면 현재까지도 배번에 무척 민감하다. 선수 배번은 분명 자신의 상징성과 팬 서비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이래저래 선수 배번에 대한 지도자와 선수의 인식 재고가 필요하다. 만약 한국과 같이 경기출전 시 100번에 육박하는 배번을 달고 경기에 임한다면, 이는 자신의 이미지 각인은 물론 축구 포지션에 따른 배번 부여를 역행하는 처사인 동시에 팬을 무시하는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분명 FIFA의 선수 배번에 대한 규정은 명문화되어 있다. 이에 한국축구에서의 초, 중, 고, 대학, 실업 등 아마추어 축구에서는 대회출전 선수 배번은 1번부터 일렬 순으로 관례화 되어 있다. 이 같이 아마추어축구에서는 선수 배번에 대한 관례화가 어느 정도는 이행되고 있지만, 프로축구(대표팀 포함)에서는 배번의 일련 순 관례화를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한국축구 현실이다. 물론 팀 여건과 사정 및 선수 개인 선택에 따라 배번은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축구 배번 흐름을 벗어난 100번에 육박하는 배번 착용은 한국축구가 한번쯤 곱씹어 봐야 할 하나의 과제다. 선수 배번은 존재감의 상징성, 포지션, 심판의 선수 식별, 팬 서비스라는 궁극적 목적을 기초로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봤을 때, 100번을 육박하는 배번으로는 배번의 의미와 중요성, 상징성, 이미지를 찾기 어렵다.

 

골키퍼:1 수비:2~ 미드필더:7~ 스트라이커:10~

물론 기존의 선수 배번은 1~99번까지 어떤 번호를 달아도 상관없지만 배번의 기초를 크게 벗어난, 골키퍼:40 수비:80~ 미드필더:77~ 스트라이커:50~(예: 한국프로축구)등과 같은 배번을 착용한다면, 우선 먼저 와 닫는 선입견은 왜!라는 의문점일 뿐 중요성, 상징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축구는 만국 공통어다. 민족, 언어, 피부색에 관계없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축구는 하나의 매개체로 엮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한국축구는 이 매개체의 틀을 벗어나 외로운 나 홀로 독주를 하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쯤 돌이켜 볼일이다.

이제 한국축구도 선수 배번에 관한 인식재고 없이는 축구의 묘미도 반감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도자와 선수 모두 깨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으며 팬에 대한 서비스도 아니다. 사실 현재는 포지션에 따른 배번의 구별은 거의 없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선수 배번 자체가 그 선수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배번 선택은 결코 숫자 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병윤 / 용인시축구센터 원삼중 코치

 

자료출처 :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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