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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코트의 신사들을 위한 필수품 '정장'

--민준구 농구

by econo0706 2022. 11. 1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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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2. 15.

 

흔히 프로농구 감독들을 ‘코트의 신사’라 부른다. 거친 몸싸움이 일어나는 뜨거운 코트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선수들을 지휘하기 때문이다.

한국농구 역사상 첫 정장을 착용한 주인공은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이다. 1978년 현대의 감독이던 방열 회장은 라이벌 삼성과의 실업연맹전에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정장을 착용했다. 지금은 큰 문제가 안 되지만, 당시 규정상 위반이었던 셈. 결국 테크니컬 파울로 2점을 내준 채, 경기를 해야만 했다. 트레이닝 복과 운동화를 착용해야 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방열 회장은 “당시 현대와 삼성은 라이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또 삼성의 감독은 1년 후배인 김인건이었다. 라이벌, 그리고 내 후배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고, 팬들에게도 젠틀한 모습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래서 정장을 착용했는데 테크니컬 파울을 주더라(웃음). 다음, 그 다음 경기에서도 주길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제자였던 (최)희암이가 선수단을 대표해 찾아온 적이 있다. 테크니컬 파울로 경기를 어렵게 시작하니 트레이닝 복과 운동화를 신어달라는 것이다. 그때 화를 냈던 것 같다. 감독이라면 매너 있는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게 내 신조였다”고 말했다.

방열 회장을 이어 박한 대한민국농구협회 부회장 역시 정장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박한 부회장은 구단에서 입으라고 했다더라. 이후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회의가 진행됐고, 정장을 착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허가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장을 착용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단순한 계기로 시작된 정장 착용이 지금까지 이어져 느낌이 새롭다.” 방열 회장의 말이다.

처음은 낯설었지만, 점점 많은 감독들이 정장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코트를 훼손시킨다는 구두 역시 받아 들여졌다. 방열 회장이 이끈 변화는 프로농구 출범 이후, 감독 및 코치 모두 정장을 착용하는 규정이 생기는 데 큰 힘을 더했다. 더불어 NBA를 모델로 한 KBL의 입장에선 정장 착용을 *규정화했다(WKBL은 규약 제119조에 ‘벤치에 참석할 감독, 코치의 복장은 정장을 착용하여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KBL 대회 운영 요강 제41조 감독 및 코치 복장


공식 경기 중 각 팀의 감독 및 코치의 복장은 정장(와이셔츠 또는 터틀넥 스웨터) 또는 한복을 착용할 수 있다.

KBL 관계자는 “농구는 거친 스포츠인 만큼, 그들을 이끄는 수장들의 의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중, 그리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감독이 대외적으로 깔끔하고 매너 있는 이미지를 드러내려면 정장을 착용하는 것이 알맞다고 판단했다”며 “감독이 원한다면 한복도 입을 수 있다. 과거 한중올스타전 때는 신선우 전 감독이 한복을 입기도 했다. 문경은 감독 역시 설날에 열리는 경기에는 한복 차림으로 선수들을 지휘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감독들이 생각하는 정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원조 ‘코트의 신사’였던 김진 전 감독은 “감독에게 있어 정장은 유니폼이다. 기본적으로 팬들에게 단정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예의다. 정장을 입으면 사람이 차분해진다. 정리된 자세에서 경기 준비를 하고, 들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의견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김진 전 감독과 함께 ‘코트의 신사’로 불리는 추일승 감독 역시 경건함을 이야기했다. “팬들을 위한 매너이자, 경건함이라고 본다. 트레이닝 복을 입었을 때와 정장을 착용했을 때는 큰 차이가 있다. 말끔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농구란 스포츠가 치열한 만큼, 감독의 정장 차림이 과열된 상황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시각적인 효과에서 좋은 효과를 낸다.”

방열 회장은 “예비군이 돼서 군복을 입으면 사람이 늘어지는 것처럼 트레이닝 복, 운동화를 신으면 선수들은 물론 심판들에게도 막 대할 수 있다. 정장을 착용하면 사람 자체가 달라지지 않나. 매너를 지키고 멋진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인보다 체격이 큰 감독들에게 몸에 맞는 정장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사이즈인 만큼, 감독들은 외국 출장 시 정장 구매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추일승 감독은 “국내에서 몸에 맞는 정장을 찾으려면 수소문을 해야 할 정도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것이 있더라도 4~5벌 정도 한정 판매를 하기 때문에 빨리 구매해야 한다. 평소에는 외국 출장을 갈 때 구매하거나, 지인을 통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넥타이다. 지난 시즌까지 KBL의 모든 감독들은 의무적으로 넥타이를 매야 했다(WKBL은 별도 규정이 없어 자유롭게 착용 가능했다). 그러나 KBL은 이번 시즌부터 넥타이 착용을 자유롭게 했다.

추일승 감독은 “넥타이를 매는 게 더 단정한 건 맞다. 그러나 원정 경기 때는 갖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또 정장에 따라 다른 색을 매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번 시즌부터 넥타이 착용이 자유로워졌다. 원정 때는 착용하지 않지만, 홈 경기 때는 웬만하면 매려 한다. 홈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웃음)”라며 웃음 지었다.

농구의 격을 올린 정장. 감독들은 입을 모아 매너, 그리고 예의를 이야기했다. 트레이닝 복과 운동화에서 정갈한 차림의 정장과 구두로의 변화는 수많은 ‘코트의 신사’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매 경기마다 단정한 감독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끔은 겉옷을 벗고 목에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매너, 그리고 예의를 위해 착용한 정장, 과연 그 의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까?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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