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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수의(壽衣)대신 유니폼 입고 떠난 슈퍼스타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2. 1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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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8. 24

 

우선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의 일부분이다.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마산을 향해 출발하는 1982년 2월 7일의 삼미 슈퍼스타스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과거 인천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이자 '아시아의 철인' '한국의 홈런왕'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장악한 한국 야구의 패왕이자 위대한 초대 삼미 슈퍼스타스의 감독 박현식씨의 사진과 기사가 실려 있었다.

 

'2월 8일부터 시작될 스프링캠프에서 박 감독이 부르짖는 훈련 목적은 여타 팀과는 달리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이다. 스포츠맨십.젠틀맨십을 갖추지 못한 선수는 대성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마산을 향해 출발하는 오늘도 그는 간편한 트레이닝복을 마다하고, 선수 전원에게 정장을 하도록 엄명했다'.

 

나는 경악했다. 아아, 저 복장은….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평범한 신문기자로 일상을 살아가는 슈퍼맨의 복장 아닌가. 그렇다. 나의 삼미는 야구에 대한 마음가짐과 그 출발부터가 이미 슈퍼했던 것이다."(후략)

'아시아의 철인'이라는 말을 처음 듣더라도, 꼭 삼미의 팬이 아니었더라도, 또 인천 야구와 어떤 상관이 없더라도 잠깐 눈을 감고 고인(故人)의 명복을 빌어주시길. 20일 76세로 세상을 떠난 고(故) 박현식씨의 영전에.

 

"수의(壽衣)대신 KOREA가 새겨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혀 달라"는 그의 유언을 접했을 때, 소설 속의 기사 인용부분이 떠올랐다. 하늘나라로 가면서 야구유니폼을 입혀달라는 그의 말에는 전지훈련을 떠나며 트레이닝복 대신 정장을 고집했던 그의 완고함,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의 몸가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쯤, 병상의 박현식 옹과 전화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번 찾아 뵙고 싶은데요."

"아냐 오지마. 요즘 더 힘들어졌어. 좀 낫거든 그때 보자고."

"병세는 좀 어떠세요."

"말을 자꾸 하면 숨이 차. 체중도 20㎏이 줄었어…."

"올스타전 때 시구하셨잖아요."

"그때 참 좋았어, 정말 좋았어…."

 

긴 대화는 할 수 없었다. 병세가 호전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고, 이제 그는 광목으로 만들어진 50년대의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하늘나라로 가고 있다. 첫 전지훈련 때 입었던 정장보다 그에게는 훨씬 편안한 옷 아닌가. 그곳에서, 54년 필리핀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때렸던 그 홈런을 때리고 있을 터이다. 소설 속 삼미 슈퍼스타의 '슈퍼스러운' 출발처럼 그는 영원히 슈퍼스러웠다. 오늘, 그의 야구인장이 열린다. 오늘은 '인사이드피치'도 그 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이 아닌, 영원한 팬클럽이고 싶다.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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