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4. 25
1970년대에 들어서서 아시아 지역 스포츠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등장이었다. 마오저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장제스의 국민당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동아시아 역사, 나아가 세계사에 일대 변화를 일으킨 중국 내전의 후폭풍은 20여년 뒤 스포츠 분야에도 몰아쳤다.1974년 테헤란에서 열린 제 7회 아시아경기대회에 중국이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출전했다. 물론 중국은 이 대회 전에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축구 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에 나서는 등 부분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국내 문제로 스포츠 분야에 크게 신경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는 중국만 처음 출전한 게 아니었다. 북한과 바레인, 이라크, 쿠웨이트, 라오스, 몽골 등 7개국이 첫선을 보였다. 이들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서아시아 국가 등으로 아시아 스포츠 판도의 변화를 예고했다.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만리장성’중국 농구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한국은 남자 농구 준결승에서 중국을 연장 접전 끝에 119-114로 잡았으나 결승에서 당시 지역 라이벌이었던 이스라엘에 85-98로 져 대회 2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이스라엘은 그때 아시아경기연맹(AGF)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82년 12월 쿠웨이트 등 서아시아 나라들이 주축이 돼 AGF가 해체되고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가 출범하면서 이스라엘은 아시아 스포츠 무대에서 축출됐다. 이후 농구는 물론 축구 등 모든 종목에서 한국은 아시아 지역 대회에서 이스라엘과 마주칠 일이 없게 됐다. 아시아 스포츠 무대에서 밀려난 이스라엘은 종목별로 유럽 지역 연맹에 가입했고 1994년 EOC(유럽올림픽위원회) 회원국이 되면서 아시아와 영원히 이별했다.세부 종목으로 추가된 여자 농구에서는 5개국이 돌려 붙기를 해 중국을 84-71로 꺾었으나 일본에 70-71로 져 3승1패로 준우승했다.이 대회에 출전한 대표 선수들은 곽현채 강호석 이보선 김경태 최경덕 유희형 김동광(이상 남자) 김재순 원영자 강현숙 이옥자 유쾌선 조영순(이상 여자) 등이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중국 농구는 이후 아시아 판도에 큰 변화를 예고 했고 실제로 1970년대 중반 이후 남자는 중국의 독무대가 열렸다. 1975년과 1977년, 1979년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와 1978년 제 8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3파전이 펼쳐졌으나 승자는 늘 중국이었다. 이 무렵 중국에는 ‘공포의 만리장성’무티에추(228cm, 2008년 작고)가 버티고 있었다.
▲ 1970년 12월 방콕에서 열린 제 6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한 농구 대표팀. 한국은 이 대회 축구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 ⓒ 한국 농구 100년
한국은 1975년 방콕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예선 리그에서 일본에 102-106으로 진데 이어 결선 리그에서 중국에 78-97로 패해 3위에 그쳤다. 1977년 쿠알라룸푸르 대회에서는 결선 리그에서 일본을 연장 접전 끝에 90-86으로 꺾었으나 중국에 58-61로 져 2위를 했다. 1979년 나고야 대회에서는 결선 리그에서 일본에 85-100, 중국에 88-94로 져 또다시 3위에 그쳤다. 이때 일본에는 234cm의 장신 센터 오카야마 야스다카가 있었다. 190cm대 센터도 보기 힘들었던 한국으로서는 골 밑의 절대적인 열세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는 중국과 격돌 외에 북한이 말썽을 피운 대회로 한국 스포츠사에 남아 있다.
1966년 제 5회 방콕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상대는 북한이었다. 김동광과 박수교, 이충희, 신선우 등으로 짜인 한국은 예선 리그 B조에서 필리핀을 95-76으로 물리치는 등 4전 전승의 기록으로 결선 리그에 올랐다. 한국은 결선 리그 1차전에서 일본을 85-76으로 누르고 북한과 2차전에서 맞붙었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줄곧 리드를 잡아 나가다 경기 종료 15분 33초를 남기고 51-37로 크게 앞섰다. 이때 북한은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해 버렸다. 한국은 북한에 거둔 기권승을 포함해 4연승한 뒤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과 맞섰으나 장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71-91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12편에 계속>
신명철 편집국장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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