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지도자

구시렁 구시렁

by econo0706 2007. 2. 8. 10:39

본문

우리가 좋아하는 TV 시리즈 중 '동물의 왕국'만큼 장수(長壽)하는 프로그램도 드물 것이다.
 
'동물의 세계', '밀림의 세계' 등으로 이름은 여러 가지이지만 내용은 언제나 동물들의 일상을 통한 여러 가지 모습들을 모여주고 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의 세계에도 나름대로 질서가 있고, 강한 자라고 하여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만이 아니라 공생(共生)의 관계를 맺어 서로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자기들의 먹잇감이기는 하나 필요한 만큼 취(取)한 후에는 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자연을 바꿀 수 있는 영장(靈長)이라기보다는 자연이 인간을 가르치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배웠던 것 중 왕자(王者)의 의미가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우리가 백수(百獸)의 왕이라고 한다면 단연 호랑이와 사자를 생각한다. 혹자는 코끼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코끼리는 초식동물이다 보니 왕의 의미하고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그저 초원의 고문(顧問)격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호랑이가 더 셀까, 사자가 더 셀까 하는 논쟁부터 호랑이와 사자의 힘겨루기를 은연 중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언젠가 뉴스에서 저쪽 땅의 김정일이가 사자와 호랑이를 싸움시켜서 어떤 결과가 나왔느니 하는 것을 본 기억도 있을 정도이다.  
 
아마 초원에서는 사자가 더 용감하고, 산악지역에서는 호랑이가 더 용맹스럽다는 결과가 나올 듯 하기도 하나 그것은 호랑이나 사자의 대표선수가 누구였던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 논쟁의 대답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려면 힘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왕은 어디까지나 군중을 다스리는 자리이지 군중을 힘으로 억압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을 유심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호랑이는 독거(獨居) 생활을 한다. 특히 수호랑이는 종족 번식을 위해 암호랑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혼자 산림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군집(群集)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우두머리인 수놈 한 마리를 정점으로 수놈 몇 마리와 암놈 몇 마리 그리고 새끼들까지 무리를 이루어 초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때 그 집단의 왕인 수놈 사자의 행태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매일 초원에 배 깔고 엎드려 있으면서 제 마누라와 새끼들이 힘들여 잡아온 얼룩말이나 영양 따위의 먹이는 제가 제일 먼저 먹는다. 철모르는 새끼가 먹으려고 덤벼들면 그 큰 입으로 호통을 쳐 내쫓기도 한다. 어찌 보면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가 먹이 앞에서는 제 새끼도 내치는 아주 몰인정한 놈으로 보여지기 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수의 왕이라는 칭호는 그런 평화스런 시기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선가 집채 덩이만한 코끼리들이 성이 나 사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몰려들어오는 장면을 본적이 있었다. 그때 사자 무리는 갓 난 새끼들이 있어 빨리 피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였고 코끼리 군단의 진군은 전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사자 가족의 멸망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이때 일어난 것이 바로 초원에 배 깔고 엎드려 있던 수놈 사자였다. 그 놈은 갈기를 세우더니 쳐들어오는 코끼리를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물론 코끼리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도 알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놈은 맨 앞의 코끼리를 향해 덤벼들었고, 몇 순간의 대결 만에 그놈은 코끼리의 발에 짓밟혀 장렬한 전사를 하고 말았다.
 
그러면 그놈은 왜 죽을 줄 알면서도 코끼리에게 덤벼들었을까? 그 조금의 시간을 벌어 자기 동료들과 자기 가족들의 피신을 위해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수놈 사자의 역할이었던 것이고, 그런 역할을 알고 있는 사자였기에 우리는 그를 백수의 왕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자의 능력은 위기에 나타난다. 평화로운 시기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하는 지도자는 대개 악수(惡手)를 두고 물러난다.
 
물론 평화 시에 지도자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평화 시의 지도자는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업적을 쌓아야 한다. 사자가 공존공생(共存共生)의 평화로운 초원을 미래를 위해 개혁하고, 혁신하고자 하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위기의 시대엔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무리를 이끌고 나가야 하기도 하고,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지도자는 맨 앞자리에 서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누구의 책임도 아닌 나의 책임과 나의 희생이 우선이라는 정신으로 지휘해야 할 것이다. 죽을 줄 알면서 코끼리에게 달려드는 사자처럼…
 
이제 우리는 또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 그리고 또 선택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는 우리의 왕이 될 것이다, 백수의 왕이 아닌 백성(百姓)의 왕.
 
사자를 뽑을 지, 호랑이를 뽑을 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잘 살펴보자.
 
2007년 1월 6일

'구시렁 구시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정(改定)과 개정(改正)  (0) 2007.02.08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  (0) 2007.02.08
좋을 호[好]자의 어원  (0) 2007.02.08
또 풀어야 할 수수께끼  (0) 2007.02.08
새해의 의미  (0) 2007.02.0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