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개정(改定)과 개정(改正)

구시렁 구시렁

by econo0706 2007. 2. 8. 10:41

본문

어제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했으면 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끄럽게 될 예정이다.

 

개정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또 개정은 좋지만 이 정권 아래에서 하느냐, 저 정권 아래에서 하느냐를 놓고 또 국민들이 이리저리 자기의 생각을 모아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단임제(單任制)가 좋다느니, 연임제(連任制)가 좋다느니, 아니다 중임제(重任制)가 제일 좋다느니 하는 논의들이 신문·방송에서부터 술자리에 이르기까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게 될 터이다.

 

말 그대로 국론의 분열은 눈에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헌법의 개정이 개정(改定)이냐 개정(改正)이냐 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돼있다.

 

개정(改定) : 한 번 정한 것을 고치어 다시 정함
개정(改正) : 그르거나 알맞지 않은 것을 고치어 바르게 함

 

따라서 기왕 개정하려면 개정(改定)이 아니라, 개정(改正)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관례(慣例) 상 법률의 개정은 개정(改定)이라는 단어를 섞어서 써왔었다. 아니 대부분 개정(改定)이라고 쓰는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세법개정, 환경법개정 등에서…

 

아마도 상황에 따라 미비한 점을 새로 추가하거나 시행해보니 별로 좋지 않았던 점을 빼기 위해 법을 고치다보니 개정(改定)이 맞는가 보다.

 

하지만 9번의 헌법 개정에 있어서는 언제나 개정(改正)이라는 단어를 써왔다. 뭔가 잘못된 것을 찾아내서 고치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온 나라의 법을 기속(羈束)하는 헌법이다 보니 잘 못된 점이 있으면 빨리 찾아내서 고쳐야 온 국민이 편할 터이고, 그러자니 늘 잘 고쳐야 하는 것이니 당연히 개정(改正)이 되어야 맞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놈의 개정이라는 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만 해도 그렇다. 4년 중임제, 중임제 철폐, 7년 단임제, 5년 단임제, 이번엔 4년 연임제…. 직선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대통령선거인단 선거, 다시 직선제….

 

처음으로 헌법 개정을 보는 신세대의 눈으로 볼 때에는 엄청나게 다른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헌법 개정 투표만 몇 번씩 했던 쉰세대의 눈에는 그게 그거라고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개정(改正)이라는 단어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총 9번의 헌법 개정 때마다 그들은 그 바꿈이 개정(改正)이라고 했던 것이다.

 

중임제 철폐도 개정(改正), 단임제도 개정(改正), 연임제도 개정(改正), 직선제도 개정(改正), 간선제도 개정(改正)…

 

도대체 뭐가 잘못되고 왜 잘못되었는지는 불문하고 그저 자기네가 고치려 하는 것이 언제나 '그르거나 알맞지 않은 것을 고치어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보니 '또 지들의 필요에 따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지껄이겠구나'하는 마음만 드는 것이다.

 

헌법이든, 민법이든, 형법이든, 관습이든 잘 못된 것이 있으면 바꿔야 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만든 것인데 사람들의 합의만 있으면 무엇인들 바꾸지 못하랴.

 

하지만 합의 없이, 아니면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그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을 현혹시켜 바꿔나간다면 그것은 결코 개정(改正)일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지난 번 제도도 괜찮았는데 나는 이것이 더 좋아 보이니 한 번 개정(改定)해 봅시다'하고 나서 볼 수는 없는가. 또 옛날의 그들처럼 '지난 번 것은 잘 못된 것이니 이번에 아주 좋게 개정(改正)해야 합니다'하고 나선다면 지난 번에 그렇게 만들었던, 아직도 이 땅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고 있는 그 시절의 -물론 대다수 지금도- 유권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되겠는가 말이다.

 

2007년 1월 10일

'구시렁 구시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벌과 농민  (0) 2007.02.08
야당 총재 손학규  (0) 2007.02.08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  (0) 2007.02.08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지도자  (0) 2007.02.08
좋을 호[好]자의 어원  (0) 2007.02.0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