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2. 15
"가라."
1월 24일 서울 삼성병원. 삼성 선동열 감독의 부친 고 선판규씨는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됐으니까 이제 돌아가라고. 자신이 위독해, 병세가 깊어져 전지훈련지 괌에서 급히 귀국한 아들에게 이제 괜찮으니까 어서 가서 팀 훈련에 전념하라고. 그리고 보름 후인 2월 10일 눈을 감았다. 괜찮은 게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아들이 팀 훈련을 잘 못할까봐. 그걸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10년 전 선 감독의 모친이 위독했을 때, 그때도 선옹은 그랬다. 그때 선동열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선수였고,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다. 선 감독은 그해 설날 때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전화통화를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수화기를 어머니께 건네주셨지만 어머니는 말씀을 못 하셨지요.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위독하시단 걸 알았지만 아버지 말씀은 달랐습니다." 그때도 선 감독의 아버지는 "아직은 괜찮다. 너는 오지 마라. 거기서 훈련에 전념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동열의 주니치행이 결정된 1995년 겨울 어머니 김금덕씨는 암 투병 중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 일본으로 간다고 했을 때 병상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서 가라. 곁에 없어도 된다. 너는 내 아들이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아들이다"라고. 자식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말이었으리라. 낯선 곳으로 가는 자식을 걱정해 한 말이었으리라. 그렇게 선동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먼저 챙겼다. 전형적인 '우리의 부모'다.
11일 빈소에서 만난 선 감독은 부친의 생전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고도 울지 않은 그였다.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정상에 올랐을 때 호쾌하게 웃기만 하던 그였다. 그런 그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야구가 뭐기에 어머니 때도, 아버지 때도 임종을 못 지켰으니 저 같은 불효자가 어딨습니까."
선동열은 효자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를 위해 남몰래 기도했고, 아버지를 위해 전지훈련 갈 때마다 좋은 지팡이를 찾아 일본을 뒤지곤 했다.
2006년을 시작하는 지금, 수퍼보울을 통해 하인스 워드 모자(母子)의 정이 화제가 됐다. 워드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형적인 '우리의 어머니'였다. 워드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어머니 몫으로 돌렸다. 프로야구에서는 선동열 감독의 부친이 생전에 아들에게 내려준 사랑이 화제다. 워드의 어머니, 선동열의 아버지는 특별한 부모였을까. 아니다.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부모'다. 워드와 선 감독을 통해 우리의 부모, 그들의 내리사랑을 다시 생각한다.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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