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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칫솔을 찾아서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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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파 덕분에 한반도에 양지(楊枝)가 퍼져나가게 되었는데, 자 이 대목에서 사족이지만 우리 어르신네들이 쓰고 있는 요지(ようじ : 이쑤시개)란 말의 어원을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중국에서 한반도로 불교가 전해지고, 한반도에서 다시 일본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덤으로 따라간 것이 바로 양지(楊枝)를 하는 문화였다.
 
“이것이노 뭐하자는 플레이 이므니까?”
 
“이것은 불자들이라면 꼭 해야하는 양지(楊枝)라는 겁니다.”
 
“요지(ようじ : 양지楊枝) 말이므니까? 양지가 뭐하는 것이므니까?”
 
“밥을 먹고, 이를 청소하는 겁니다.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쑤시는 것이지요.”
 
“아…그랬으므니까?”
 
이리하여 일본에도 양지 문화가 퍼지게 되었고, 이 양지를 요지라 발음하기에 ‘이쑤시개=요지’ 라고 정착이 된 것이다. 이 요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퍼진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돌고 돌고 돌아 다시 한반도로 넘어온 말이었던 것이다.
 
자자, 각설하자…어쨌든 이 양지(楊枝)문화는 구강위생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문제는 너무 위험했다는 것인데…이 불편하고 위험한(?) 양지문화는 근 1천년이 지나도록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칫솔’이라는 물건이 나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울리 사람, 구강위생학의 혁명을 만들었다 해!”
 
“그것이 뭔가 해? 버드나무 대신에 대나무를 쓴다는 것인 가 해?”
 
“미쳤나 해? 대나무로 이빨 쑤씨면 잇몸 다 나간다 해! 지금 무슨 죽창 찌를일 있나 해?”
 
“그럼 뭔가 해? 궁금하다 해!”
 
“이건…인류 구강위생학의 혁명이다 해! 황우석 박사가 인간 장기를 복제한 복제돼지를 만들었다면, 나는 양지 돼지를 만들었다 해!”
 
“양…지 돼지?”
 
“그렇다 양지돼지! 보라 해! 인류 문명의 찬연한 발전이다 해!”
 
명나라 중기 1495년, 중국에서 개발 된 초특급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인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구강위생 도구! 바로 칫솔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이…이게 뭔가 해? 꼭 무슨 젓가락에 털박아 넣은거 같다 해!”
 
“맞다 해! 이거 나무에 돼지털을 박아 넣은 것이다 해.”
 
“돼…돼지털?”
 
“돼지털은 빳빳하고, 모 끝이 부드러워 이빨을 닦는데 좋다 해. 한번 써 보라해.”
 
“이걸로 어떻게 이빨을 쑤시는가 해?”
 
“이건 이빨을 쑤시는 아니라, 이빨을 쓸어내리듯이 닦는 것이다 해!”
 
1495년에 발명된 칫솔은 중국 전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물론, 전체로 확산 된 것이 아니라, 일부 돈 많은 귀족층들에 한해서이지만 말이다. 돼지털을 손으로 일일이 심는다는 것이 엄청난 수작업답게 코스트의 상승을 가져왔던 것이다. 자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이 칫솔이 조선으로 수입되었던 것이다.
 
“김 대감…그것이 무엇이오? 무슨 젓가락 같아 보이는데….”
 
“아…조대감, 모르셨소? 이것이 바로 명나라에서 유행한다는 새로운 양지도구, 칫솔이오.”
 
“칫…솔?”
 
“그렇소, 칫솔이오.”
 
“그걸로 어찌 양지를 한다는 것이오?”
 
“잘 보시오. 일단 여기에 이렇게…소금을 뿌리고는 입안에 넣고 아래위로 골고루 훑어 주시오. 그런 다음에 물을 머금고 헹구면…깨끗하게 양지가 되는 것이오.”
 
“오호…이런 훌륭한 도구가 있었다니, 내 당장 이 칫솔을 장만해야 겠소이다.”
 
그랬다. 조선 중기 이후 칫솔의 보급은 조선의 양지 문화에 일대 혁명을 가져오게 되었다. 1천년 가까이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고 이빨을 쑤시던 구강위생 방법에서 탈피, 돼지털로 만든 칫솔로 이빨을 닦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인데, 당장 칫솔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치약으로 쓰는 소금의 가격도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소금의 가격이 너무 비싸, 소금맛을 내는 벌레를 잡아 소금 대용으로 쓰던 것이 이 당시 민중들의 삶이었기에 소금으로 이빨을 닦는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야들아...밥 다 묵었냐?”
 
“야, 아부지…다 묵었으예.”
 
“그라믄 양지하자. 자, 모래 받아라잉….”
 
“아부지, 우리도 칫솔로 이빨 닦으면 안되요?”
 
“네 밥 잘못 묵었냐? 칫솔로 이빨을 닦겠다고? 너 돈 많냐? 칫솔이 얼만지 알어?”
 
“그렇지만…이빨이 너무 아파요.”
 
“팔자 사나운 소리 하지 말고, 모래로라도 닦을 수 있다는 거에 감사혀.”
 
그랬다. 좀 사는 집 양반들이 칫솔에 소금을 뿌려 이빨을 닦던 것과 달리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던 일반 백성들은 손가락에 모래를 묻혀 이를 닦았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층민의 삶은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칫솔 -뭐, 요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전동칫솔까지 나온 상황이지만- 이 칫솔이 한때는 사회적 부와 명성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 작은 것에도 감사해야 할지…아니면 그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한 것에 감사해야 할지. 조금은 헷갈리는 지금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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